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맘 비우는 것과 작은 욕심

이쁜준서 2021. 9. 16. 01:08

 

집안 살림에서 설겆이와 청소는 꼭 해야 하는 것인데,

남편이 설겆이와 청소를 하는지가 서너달째 접어 들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나는 옥상정원으로 올라 가고 남편은 설겆이를 하는데,

그 뒷 모습이  내게는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하는 편이 맘 편한데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아침, 저녁 식사를 하면 옥상으로 올라 간다.

현관 앞과 계단 청소는 자주 하지 않아도 되고, 옥상 빗자루질도 요즘은 낙엽이 수시로 떨어지니,

자주 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니 역시 내가 한다.

 

저녁 식사하고 옥상으로 올라 갔더니 저녁달이 싹 깎은 반달에 여유를 조금 붙인 음력 8월 8일 달이였다.

부산에서 결혼식을 하고 택시를 타고 상각으로 오시는 친정 삼촌은 조수석에 앉으시고,

뒷자리에는 시어머님이 중간에 앉으시고 신랑과 내가 창 쪽으로 앉아 왔다.

신랑도 어렵고 시어머님은 더 어렵고, 데려다 주고 밤 늦게 부산에 도착하실 삼촌께는 미안스럽고,

 

음력 정월 그믐날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 다음 날이 바람 달이라고 맞잔치라고 결혼식 한 날

시댁에 갔다가  잠은 나가 자라고 했다.( 우리 집안은 미신을 전혀 지키지 않는데 시댁은 많이 지켰다)

하도 오래 되어서 잊었는데 45세 시어머님이 되신 분은 다른 사람들이 며느리가 어른 밥이라고 밥그릇에

오붓이 떠 주는 것을 먹으니 배가 고프고 그렇다고 아침을 먹어 놓고 먼저 점심을 먹을 수도 없더라 해서

택시 뒷자리에 같이 앉아서 나는 밥을 많이 먹어야 하니 밥 그릇에 밥을 뜨지 말고 양푼에 뜨라고 했더니

예라고 대답하더라 하셨고,( 오늘 전화에서)

아들들 ( 세 아들) 한 상 차려 주고, 시어머님과 시누이와 내가 따로 상을 차려 한 방에서 먹었다.

 

너거 시동생 대학 졸업식 때  한달에 조금씩  모았던 돈으로 양복 한벌 해 줄 때 그렇게 고마웠다 하셨다.

다른 집 며느리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그 때 살던 동네에서)  에미는 나하고 목욕탕도 같이 가고,

(김장 채소 살 때, 건고추 살 때, 김장용 젓갈 살 때, 기제사 차사 장 볼 때) 시장도 같이 가고,

가전제품 사게 되면 늘 시어머님과 같이 다니고 그런 큰 물건을 살 때는 항상 의논을 같이 했고, 같이 갔다.

막내 며느리 집에 첫아기 낳아 산후구완 하러 가셔서 21년을 같이 있어도 그 며느리와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에미야!

왜 이렇게 안 죽고 오래 사는지 아침에 잠에서 깨면 또 안죽고 일어나 나온다 싶다 하셨다.

그 말씀에 어머님 연세에

귀 잘들려서 전화 통화 맘대로 하실 수 있고, 지팡이 의지하지 않고, 마을버스 타고,

또 큰장으로 가실 때는 버스 환승까지 해서 가실 수 있고, 그러신 분 잘 없으십니다.

어머님 맘 비우시고 사시니 다 어머님이 지으신 복이다 싶습니다.

에미야!

맘 비운다 해도 아직도 문득 문득 욕심이 생긴다.

욕심은 살아 있다는 증거 입니다.

욕심이 생기니 비우기도 하고 생각으로 맘도 다스리고 하시지 욕심이 없으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같지 않을까요?

그분의 욕심이란것은 우리가 한껏 맘을 비운다 하고 비운 상태 그 이상에서 작은 욕심이 생기더라

하신 듯 하다.

 

또 안죽고 살아서 아침에 걸어 나온다 하지 마시고,

그래 또 하루가 나에게 주어져서 내가 경 외우고 맘 닦아서 저승 가겠구나 다행이라 하세요라 했다.

그래 에미가 그렇게 말 해 주니 그렇게 생각 하꾸마 하셨다.

한 시간 정도 대화 하는 중에 날은 점점 어두워 졌다.

에미야 전화요금 너무 많이 나오겠다.

아닙니다 무제한으로 되어 있어 상관 없습니다.

 

나는 시아버님도 계시지 않은 집안에서, 45세에 시어머니가 되신 그 분이 참 안된 맘이 였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란 맘으로 지냈다.

우리 세대는 모두 잠깐의 시집살이를 하고 50대 때부터는 거의 해방을 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시어머니가 된 그 시집살이는 며느리 시집살이로 이어졌고,

또 요양병원으로 가시면서 그 단체 생활에서 규율에 맞게 시집살이를 하실 것이고,

쓸쓸하게 떠날 시면서 끝이 날 것이다.

혼자 사신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시는데,

그나마 그 10년 세월은 다른 모든 것에서 놓여 나시고 맘 편하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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