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이 이유식 시기를 거쳐서 밥을 먹게 되면 5살까지는 쇠고기보다 부드러운 생선을 좋아 한다.
준서 아기 때도 생선을 좋아 했고,
아기도 생선을 잘 먹어서 4살 때 부터는 가끔 조기를 사서 보낸다.
칼치도 잘 먹지만 칼치란 것이 작으면 맛이 떨어지고 커면 워낙 값이 비싸서 잘 사지 않는다.
지난 해 12월 마트에서 할인을 대폭해서 제법 큰 것을 두어번 팔았고, 또 그 무렵 헐하게 파는 장사에게서
한 상자를 사서 내가 집에서 다듬어서 냉동해서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올 해 2월 서문시장 단골상회에 갔더니 목포 먹칼치 오늘 처음 들어 왔다면서,
마트 헐하게 팔던 때 정도의 가격으로 팔아서 5마리를 사 와서 아이들 집에 가면서 가지고 갔다.
아기가 칼치 생선살을 좋아 했다.
하기야 칼치는 내 자식들도 좋아 하는 생선이다.
2일전 서문시장에 가서 아기 반찬 조기를 5만원어치 사고, 그 날 말에 어제 팔던 목포 먹칼치라고 해서
한 마리 사서 무 한칼 넣고 먹는데 남편이 아이들도 좀 사 주지라 했다.
몇마리 없었고 친구는 두마리, 나는 한마리 샀을 뿐이라 했다.
생선 가게도 어느 정도 가격이 맞아야 팔 수 있는 것이라서 아무때고 가져다 파는 것은 아니다.
아주 간혹 살 수 있다 했다.(고향이 목포)
우리가 처음 다닐 때는 직접 목포까지 아침 일찍 가서 생선을 사 와 팔았고, 생선이 맛이 있었다.
오늘 전화해서 언제 칼치 가져 오느냐 했더니 오늘 들어 왔다 했다.
전화로 6마리를 예약하고 갔더니 아주 컸다.
바닷물이 하 수상하여 앞으로 생선을 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냉동해서 아이들집에 보내는 것도
끝일런지도 모른다 싶었다.
생선가게도 여자 주인장은 나보다 한살 많은데, 어제 부부가 건강검진을 하고 왔다면서
이상이 있다면 장사를 접을까 하는 맘이 있는지 우리가 장사 하지 않으면 이 가게 아까워서 어쩌지?
어제도 가게 문 닫고 갔다 왔더니 문이 닫겨 있으니 전화가 왔고, 몇시부터 문을 열수 있다하고
공복으로 검사하고 집에 와서는 식사 하지도 못하고 가게로 달려왔더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더라 했다.
큰 시장에서 어물전 거리도 아니고 집에서 제품을 해서 도소매 하는 옷가게, 과일 가게 채소가게들 중에서
딱 하나 어물전인데도 맛이 있으니, 시장에서 장사 하는 사람들이 단골이어서 가게는 늘 손님이 있었다.
생선장사는 첫째가 물건을 좋은 것으로 사 와야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손님이 손님을 물어 오는 것이라 했다.
자리로 보아서는 누구도 그 가게에서 생선장사를 할 수 없는 곳인데 이 사람들은 성공을 한 것이다.
내가 다닌지 20여년 쯤 된다.
생선 가게 남편은 명절대목에만 나와서 문어를 삶아주고 조기를 다듬어 주지,
평소에는옷을 잘 입고 좋은 차를 타고 한량처럼 놀러 다니는 듯 해도 물건 구입은 하는 것은 해 주는 것 같았다.
씨름선수처럼 몸집이 큰 사람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같이 점심 먹을 사람이 없으면 아내한테 와서 배달되는 점심을 시켜 먹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내가 전화를 해 놓고 갔었고, 마침 그 남편이 있었고 '아주마' 오랫만이요 하면서 일어서서 악수를 청하는데
깜짝 놀라기는 해도 악수를 받았다.
왔다 가셨다는 것도 집 사람에게 들었고, 오늘도 오신다 했어요라 반가워 했다.
아마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왔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고,
이웃 친구와 내가 오랜 단골이라 이야기 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중학생 시절에는 가을 애 호박이 맛들때 쯤이면 칼치가 제일 가격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한 상자를 사면 그 중에서 큰 것을 골라서 호박을 넣고 지져 먹고,
횟감으로 적당한 것을 뼈채로 회로 다듬어서 밭에 김장채소 중에 무를 뽑아서 무침회로 먹고,
나머지로 젓갈을 담았다.
준서에미가 중학생 때는 칼치를 연탄 직화불에 석쇠를 얹어서 구워 먹었다.
준서가 밥 먹는 아기였을 때는 가스불에 후라이팬에 구워 먹었다.
딸들은 내가 보내 주는 것 말고는 생선을 사지 않는 모양이던데,
에어프라이기에 구울 때가 많다고 했다.
나는 요즘 후라이팬에 종이 호일로 생선을 사서 기름을 넣지 않고 굽는데,
귀찮지 않을 때는 종이 호일에 사기 전에 생선 표면에 기름칠을 약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주방에 생선 냄새는 난다.
둘째네 아기는 칼치, 조기 생선을 좋아 하는데, 어쩌면 생선을 사 먹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아이들 집에 생선을 냉동 시키고 아이스를 구해서 냉동시키고 택배 보낼 준비를 한다.
부산 시절 아기였던 나는 지금 노년의 할머니이다.
하던 가락이 있어서 게으럼 부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이렇게 하고 싶어 하면서 내 손으로 내 맘으로 옥상정원을 꾸며 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항상 한다.
어느새 날이 새어 창 밖이 밝아져 온다.
어제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니 바람이 하도 불어서 떠밀려듯 했다.
옥상에서는 큰 화분도 쓰러지고 저녁 때 다독여 놓았지만 이 글을 끝내고 옥상 부터 인사 다녀 와야 겠다.
집안에서는 바람이 없는 듯한데도 막상 옥상정원에 갔더니 바람이 제법 불었다.
추웠다.
하루 이틀의 일상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사람 몇십년을 살다보면 온갖 풍상을 다 겪는것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