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목화꽃 이야기

이쁜준서 2015. 9. 23. 06:48

 

 

 

 

목화 밭에 가면 흰색, 분홍색, 짙은 분홍색의 꽃이 피어 있었다.

내 어릴 적에는 고향에서 집집마다 목화를 길러서 가을에 목화솜을 따서,

그 솜을 타서 시집가는 딸래들 이불을 해 주고,

 

준서할미 국민학생이던 시절까지도, 우리 고향에서는

목화로 실을 자아서 그 실로 베를 짜서, 그 솜으로 솜을 둔 이불을 하기도 했었고,

집에서 짠 그 천으로 솜을 두고 누벼서 겨울 윗저고리를 만들기도 했었다.

 

남자아이들 상의는 검은색으로 물들여서,

솜을 얇게 놓고,

제법 카라까지 달고, 단추를 여러개 달아서 교복처럼 만든 상의를 해 주기도 했었다.

 

아마도 집에서 목화 농사를 지어서 그 솜을 타서 시집 올 때, 이불  솜으로 한 마지막 세대가 준서할미 세대일 것이다.

친구들은 친정 엄니가 해 주신 따뜻해라고 특별하게 솜도 많이 넣은

묵직한 목화솜 이불이 없애지도 못하고, 장농에 두꺼운 이불이 밑자리를 차지해 있어

거창스러워도 버리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중간에 목화 솜을 타서 이불을 작게 만들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몇년 전 목화를 옥상정원에서  길러 보았더니,

세가지 색상의 꽃이 피는 것이 아니고,

아침에 흰색으로 꽃이 피었다 연분홍으로 변색이 되고, 하마 연분홍색에서부터

꽃잎을 접기 시작해서 진한 분홍색에서는 야무지게 꽃잎을 감아서 그 하루 낮시간 잠깐의 개화 시간을 마감을 했다.

 

 

 

 

 

 

 

 

목화씨방이 결실 된것을 다래라 부르는데,

이 다래가 완전하게 익으면 갈라지면서  하얀 목화를 피워 내는데,

이렇게 연할 때 따서 먹으면 달큰했다.

 

소 풀 뜯기러 들로 가서 이 목화 다래 따 먹고, 그 밭 주인이 아니어도,

어른들께 들키면 혼이 났었다.

 

어디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먹고 싶고, 그 몰래 먹는 재미, 친구들과 하하거리면서

따 먹는 재미를 놓을 수가 있었겠는가?

숱하게 몰래 몰래 따 먹는데, 딱딱하면 먹지 못하니 잠시 잠깐 흘러 가는 재미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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