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그날이 그날.....

이쁜준서 2013. 2. 11. 08:23

 

 

음력 섣달 그믐 날 밤이다.

사브작 사브작 하는 일도 끝났고, 잠님은 아직 오지 않았고,

이제 30분여 시간이 더 가면 정월 초하루날이 시작 되고, 새 해가 시작 된다.

 

예전 고향에서 어린 시절에도 섣달 그믐 날밤에는 정지(부엌) 에도 등을 밝혀 두었고,

마루 앞에도 등을 밝혀 두었다.

섣달 밤 자정을 넘기면 정월 초하룻날이 되니 새 해를 불 밝혀 맞이 하는 건지?

아니면 가는 해를 불 밝혀 잘 보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했다.

 

그러고 초하룻날 새벽 집안의 가장인 남자가 먼저 마당으로 나가서 집 한바퀴를 돌아 보면서

한 해동안 무탈하게 잘 살게 해 달라고 천지신명과 조상님께 맘으로 기원을 드렸고....

그러고 나서 집안의 살림꾼인 며느리가 샘물을 길어 와 맑은 정화수 한 그릇을 조앙신에게

올리기도 했었다.

 

 

 

도시에서 살면서 잊혀 졌던 그 풍습을

역시나 지방도시인 결혼한 시댁에서는 시골처럼 그렇게까지는 못 하셨지만,

섣달 그믐날 밤에는 방마다, 또 부엌, 마루에 달린 전등까지 환하게 켜 두라 하셨고,

정월 초하룻날 제일 먼저 준서외할아버지를 깨워서 마당에 나가 대문 열었다 살짝 닫아 두고

오라고 하셨고, 그러고 나면 시어머님이 나가셔서 수도물 받아 부엌에 한 그릇 떠다 놓으시고

들어 오신 후 젊은댁인 준서할미와 동서가 일어나고 설명절이라고 모인 식구들이

하나 둘씩 일어 났다.

우리 집에서 섣달 그믐날 밤 밤새도록 불을 켜지 않은 것이 이젠 10여년이 다 되어 간다.

우리 조상님들은 설명절이 시작되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은,

그날이 그날이 아닌 확연한 구분가는 날로 만드신 것이다.

 

기제사이던, 차사이던 상을 차려 놓고, 조상님을 모시고, 밖에서 서서 안의 상차림을 보면

깐촘하게 담아 놓은 제수 음식을 보면 저 몇몇가지를 만든다고 내가 그렇게 힘이 들었던가?

싶어서 수고로움보다 상에 다 못 얹어서 따로 작은 상도 덧 붙이기도 하지만,

해 놓은 음식은 적게만 보였고, 수고로움은 더 커게 생각하게 되었다.

 

섣달 그믐날이라고 시간이 더 적은 것도 아니고,

설명절인 정월 초하루라고 시간이 더 많은 것이 아닌,

어찌 보면 그날이 그날인데,

 

설명절이 있어 그날이 그날이 아닌것이다.

나이가 한살 더 먹으니, 자라는 아기들은 어린이 집에 가기도 하고,

자라는 어린이들은 유치원에 가기도 하고,

자라는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학생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 사이에 먹은 나이 한살 차이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적으로 성인이라 인정을 하게 되고,

희망적인 한 살 더 먹는 새날인 것이다.

 

설 한파가 아무리 폭한이라 해도 귀향길은 뜨겁다.

길에다 돈을 뿌리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고향길 부모님 곁으로 가는 길이 이어지는 한

우리는 그래도 희망적인 나라다 싶다.

부모님을 생각하고, 형제, 친척들이 모이는 인정이 있어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그날이 그날이기도 하지만, 그날이 그날이 아니어서 희망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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