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연탄 난로 하나 놓고 싶다.

이쁜준서 2012. 12. 13. 06:30

 

적산 가옥 [敵産家屋]

(1)

자기 나라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 소유 .

(2)

[역사] 1945 팔일오 광복 이전까지 한국 있던 일제() 일본인 소유 집을 광복 이르는 .

해방 되자, 미군정 적산 가옥 모두 몰수하였다.

 

 

연탄 난로

 

부산에는 준서할미가 고등학생 시절에도 적산가옥이 있었다.

마로보시 화물회사 사택처럼 아주 작은 집도 있었지만,

 

남부민동 언덕바지에 이층으로 되고,

1층 실내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면 1층과 마찬가지로 다다미 방이 2개 있고,

다다미 방 앞으로 쪽마루 정도의 복도처럼 생긴 마루에서 미닫이 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고,

이층에는 발코니도 있고,

 

한국인 집들과는 다르게 비록 재래식 변소이지만 나무로 만든 뚜겅으로 변기를 막은 실내 변소도도 있었던 집이였다.

그 집들은 온돌이 아니고 바닥은  다다미로 깔려 있고,

일본인들이 살 때는 달라 겠지만, 한국인들이 살 때는 연탄난로를 방 안에 들이고 살았다.

아마도 한국인이 살면서 1층 안방만 구들로 고친 모양인지 1층 실내의 마루를 문처럼 들고

아래로 들어 가면 연탄 아궁이가 있었다.

 

그러니 겨울이면 그 난로에서 밥도 해 먹고 알미늄 양동이나 알미늄 큰 주전자를 얹어 뜨거운 물을 쉽게 쓸 수 있었고,

밤에 잘 때는 양은을 접어서 만든 통에 난로 위에 얹어 뜨겁게 데운 물을 부어 이불 속에 넣고 자면

열기가 많이 식기는 했지만, 아침에도 싸늘하게 식지는 않았다.

 

그 시절 실내에 연통을 꼼꼼하게 이어서 밖으로 연탄가스를 빼고, 연통을 고정 시키기 위해 철사로 메어서

벽으로 끌어다 고정 시킨 철사 줄에는 양말을 널어 놓으면 바싹하게 말라 있어 참 좋았었지.

지금 같으면 양말에서 냄새가 난다고 연탄난로를 실내로 들여도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일제의 적산 가옥들은 부산진 쪽에도, 범일동에도, 남부민동에도 있었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가 36년이고, 부산은 항구이다보니,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것이니

준서할미가 모르는 적산가옥 촌들이 더 있었을 것이다.

 

연탄 난로가 실내에 있으면 바닥이 난방이 되지 않아도

방바닥에 깔려 있는 일본식 돗자리는 솜이불처럼 두툼 한 것이라

그리 차겁지 않았고, 실내 공기는 정말로 따뜻했다.

올 겨울 강추위가 일찍 와서 그런지 방안에 있어도 춥다.

정말 연탄 난로 하나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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