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0년 전이었던가?
꿀병에 고추장을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두고 먹던 때 였는데, 뚜겅을 잘 못 닫아 놓았던지?
뚜겅은 준서할미 손에 있고, 고추장 병은 발등에 떨어지고 순간적으로 떨어진 곳이 푹 갈아 않더니
또 부어 올랐지요.
준서외할아버지는 집에 없었고,
동네 친구 남편이 오트바이로 병원까지 태워다 준다는 것을 친구 남편을 뒤에서 잡고 갈 수가 없어서
신발을 못 신어서 비닐 팩 서너겹에 발을 넣고 고무줄로 묶고는 걸어 나가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다녀 왔었지요.
몇일을 그렇게 다니다 나중에는 고무신을 신을 수 있어
그 시절에는 남자고무신 모양으로 생겨도 보라색 고무신이 있어
보라색 고무신을 신고 병원을 다녔지요.
그런 상황에서 서울에 종동서님이 쓸어져 말문을 닫았으니 얼굴 볼려면 왔다 가라는 소식을 듣고,
고무신을 신고 서울도 다녀 왔고,
집으로 돌아 와서 이틀 후에는 초상이 나서 또 고무신을 신고 밤 열차를 타고 서울로 또 갔었지요.
경희대 한방병원으로.
초상이 끝나고 친정 작은아버지가 강남에 사셨는데, 전화를 해서 숙모님께 제 행색이 이러 이러 해서
뵙고 못가고 내려 간다고 했더니, 그런 차림으로는 오지 말고 바로 가라고 하셨지요.
그 작은어머니는 경주 시골에서 친정 언니들이 승용차를 타고 오시는 일이 있으셔도,
차를 타고 오면서 편한 옷을 입고 오다가 서울 가까운 휴계소에서 한복으로 바꾸어 입고 들어 오라고 하셨지요.
서울에, 강남에 살고 있으면 남의 눈이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지요.
그 작은어머니가 올 해 일흔여덟이십니다.
겨울 들어서 문안 전화도 못드렸고,내일 몹씨 추운 날 투표하러 가실텐데, 조심 하시라고 전화를 드렸지요.
하마 두번 넘어 지셔서 무릎을 조금 다치셨다면서,
남의 집 경조사에 갈 때는 운동화를 신고 갈 수 없어, 운동화는 신고 가고 구두는 넣어서 가서 근처에서 갈아 신고
들어 간다고 하셨지요.
지금도 구두도 약간 굽이 있는 구두를 신으시고, 남의 경조사에는 꼭 치마정장차림으로 참석하시는 분이십니다.
준서할미는 무릎이 좋지 않으니 눈 온 다음 날은 운동화를 신고 다닙니다.
길이 완전 빙판이 되면 등산화를 신고, 등산작대기를 짚고 나갑니다.
이 다리에 만약 또 넘어져서 골절 생기거나 무릎 연골을 더 다치면 않된다 싶어 조심 또 조심을 합니다.
남의 경조사에 참석해도 주로 바지 정장을 입고 갑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고무신 밖에 - 그것도 겨우 신을 수 있었다면,
갈 수 없다고 서울을 가지 않았을텐데, 그 시절에는 사촌만 되어도 형제 같아서
그 모습으로 살아 생전 얼굴 보고 보내드린다고, 갔었고, 또 초상이라고 또 그 모습으로 또 올라 갔었고,
49제 하는 동안도 밤열차늘 타고 서울까지 다 다녔습니다.
보라색 남자 고무신을 신고
남에게 보이는 행색은 어찌 하옇든 도리가 먼저이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도리를 찾기 전 맘이 그렇게 먼저 움직였지요.
지금 같으면 그런 행색으로 서울까지 가지 않을 겁니다.
그 보라색 신발은 몇년 물가에 사고디를 주워러 갈 때 요긴하게 잘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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