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엄하게 훈육을 받았다. 우리 세대들 특이나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했다. 당연 그래야 되는 줄 알아서 4월 언손 호호 불면서 밭둑으로 논둑으로 호미들고 흐르는 물에 넣어도 되는 길쭉한 싸리 소쿠리에 풀을 캐면 소쿠리채로 일렁일렁 해서 씻어서 왔다. 집에 부어 놓고 다시 가는데 4월 중순이 넘어서 따뜻 해지면아기 업고 가라하니 도둑질 하듯 발자국 소리 죽여 캐 온 풀 부어 놓고, 동네 또래들과 약속 되어 있어 발자국 죽여 돌아 나와 삽작문을 나서면 냅다 뛰었다. 남자아이들은 풀캐러 보내지 않은 남녀차별도 많았고. 아이들을 그 추운 꽃샘 추위에 보내는 것은 쇠죽을 끓이는데 더 맛나게 해 준다고 아이들을 내 보내는 것이 당연시 되는 세월이였다. 봄풀을 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