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인자부터 겨울이라요라고
주간 일기예보에서도 영하로
내려간다던 기온이 현재
우리 동네가 - 2도이고.
하루중은 -3도라 한다.
낮이 되면서 더 추워진다는 말이다.
김장을 예년은 12월 4~5일에 했었는데 때로는 소금물이 아니면 배추가 얼지 싶은 때도 있었는데 ,
올해는 양념을 해 넣었고,
동원되었던 스텐리이스
큰 대야 3개는 다락으로 올라가고,
플라스틱 큰 대야와 큰 채반은 1층 작은 창고로.
절이는 큰 통은 마당 한구퉁이에 엎어 두고.
양념 시 깔았던 매트는 씻어서
옥상에 널어 두었고,
계단청소는 남편이 깨끗하게 했습니다.
김치를 가지고 친구집에 갔다오니 내가 대강치웠던
거실도 두번을 닦았다면서
아주 바닥이 깨끗했습니다.
김장의 제반일들은 끝을 내었습니다.
김장날은 바빠서 못했던
돼지고기 수육은 어제 저녁 식사에 해서 김장김치와 맛나게 먹었습니다.
아이들도 김장김치 우체국 택배 접수하고 연락해 주었더니,
정시에 퇴근해서 집밥을 먹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단지 목욕탕에 가자 했었는데.
저가 몸살이 나서 못 갔을 뿐입니다.
자식을 많이 낳은 것도 아니지만 초등학생 때의 여름방학은 조카들이 와 있었고,
우리 아이들이 대학생 때는
부산의 친정 조카들이
한번씩였지만, 중3때
와 있었습니다.
막내시동생은 창원 있으면서
친구들 만난다고 어린 아기랑
시어머님까지 오셔서
1박 2일 늘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우리 아이들이
그 분주함 속에서 자랐지
내가 엄마로서의 특별함은 생각지 못했고,
또 막내 시동생이 결혼하기까지,
저가 결혼식하고 함께 살았습니다.
아기준서를 데리고 있을 때는
준서에미가 가기 전 준서를 데리고 가까운 대학교 나무 많은 곳으로 가서 엄마는 갔다가 또 올 거라 미리 이야기하고,
에미가 전철 타러 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고 우리는 유모차 태워서
오는 길 매일 가다시피 하는 대학교정으로 가서 놀다 왔지만 늘 같이 못 있는 아기준서가 마음 아팠습니다.
아기와 엄마는 같이 있는 것이라는 그 맘이
엄마의 자리라 생각 했습니다.
준서에게는 우리 집이라 했고,
준서엄마네는 엄마집이라 했습니다.
준서는 분유 떼고, 이유식도.
말 배우는 것도 저랑 했습니다.
혹시 엄마 찾으면서
우리 집 가고 싶어 하면 맘 아플것 같았습니다.
우리 세대는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라면서 집에
같이 계셨습니다.
저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란유목민 후예들 동영상으로 보면서 할머니의 존재감을 저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또 다 큰 자식들을, 며느리들까지도,손주들도,
그 절실하게 아끼는,
아기들은 걸어만 다녀도,
온 가족들이 일을 하는 마당에서 신을 신겨 놓아도 맨발로 다니면서 보채지
않고 잘 놀기도 합니다.
그런 장면장면들을 보면서
대를 이어가면서 우리들
사회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우리들도 그 흐름으로 왔다가
또 가는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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