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친구는 누구에게나 후한 사람이다.
친정 집 부모님 가신 후 비워 둘 수
없어 우리 도시 자기 집은 비워두고 시골에 산지가
제법 오래되었다.
그 시골에서 부모님 대 친척 파파 어르신들 사시니 반찬 해서
나누어 드리기도 하고,
도시 나간 자식들이,
고모야 전화 안 받으신다 해서
가 보면 전화기는 이불 속등등에서
찾아 드리고,
조카들급도, 그들의 부모님인
파파 어르신들도,
다 그냥 이름이 고모인듯
동네 고모라 했다.
녹두를 우연히 씨앗 얻어 작년에 심었다고.
작년에 나 좀 줄 수 있느냐
했더니
두 됫박이 왔고,
돈은 안 받으면 안 되나?
하는 것을 내가 안된다 했고,
먹을 만큼 조금 심었다면서
올해는 밤, 땅콩, 오이, 풋고추
등과 함께 택배가 왔다.
말로는 3 됫박이라고 온 녹두는
한 됫박은 더 있지 싶도록 많았다.
친구가 익는 쪽쪽 꼬투리 따서
손으로 꼬뚜리 벗겨 내고 바짝 말려서 손끝으로 농사지은
알곡이었다.
녹두 껍대기 조각도 하나 없는 알곡이었다.
이웃친구가 나도 1되 달라해서
작년에도 1 됫박을 주고,
올해도 저울로 3 봉지로 나누어
한 봉지 주었다.
어제 가지러 와서 너무 많다 해서
두 분 모시고 밥 한번 먹어야겠다
했지만 주말에 잠시 와서 교회에 갔다가는 바로 시골로 가니
그런 시간 만들기도 어렵기는 하다.
50년도 넘었지만. 그러니 50년 지기 이다.
폐렴예방 주사를 맞고 온 날
택배가 왔는데 내가 후유증으로
이틀을 아파서 택배 받고,
카톡으로 고맙다고 우선 보냈고
이틀을 전화를 못했다.
우리 집에서는 준서할아버지가
설겆이 하고, 빨래 옥상에 널고등으로 도와 주었고.
어제는 몸도 나아졌고,
마트 특판 행사로 햅쌀 10Kg
15.000원 할인 행사에 간다고,
집에서 일찍 갔다가 돌아오는데.
이웃친구에게로 전화가 와서
길에서 받았다.
이런 사람이 아닌데 아무래도
많이 아파서 내가 걱정한다고
전화도 없는 것이라고,
우리 아이들 전화번호는 없고,
내 이웃친구 전화번호가 찾으니
있더라고 그 친구에게 전화
했던 거였다.
이웃친구와도 전화 통화가 안되면
우리 도시로 나와서는 우리 집에
올려했다고.
형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길에서 친구 전화기로 온 전화통화를 했다.
수년 전 50년지기들이 서울 구경을 한다고 간다고 하니.
이 친구 남편분께서 전철 환승도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걱정 되어,
수학여행 인솔 하는 교사처럼
우리들이 갈곳을 정하고.
유인물을 만들어서 같이 가셨다.
준서를 보내고도 몇년 후 였고.
준서에미가 저가 바쁘서 나가 모시지는 못하지만 구경 일정 끝나고는 저녁에 모두들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그래서 여행 일정을 준서네가 사는 쪽에서 마치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우리들이 서울로 가는 것을 늦게 안 결혼 전의 이 친구의
아들이 우리집으로 오시라고.
저는 혼자 살고 있다고.
누나집으로 가지말고
우리집으로 오시라고.
그래서 여행일정 마치고
친구의 아들집으로 갔던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