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따뜻하고
봄 바람은 살랑인다.
거실바닥이 따뜻해서
보온쇼파에서 내려 와 거실바닥에 눕기도하고 엎드리기도
하고 예전 어릴 때 시골에서 밖에서 소풀 캐고 들어와 작은 이불 들치고 따뜻한
온돌바닥의 그 감촉이
본능적으로 노년의 나를 거실 바닥에서 놀게 한다.
4월이 되면 풀들이 제법 자랐다.
호미로 뿌리까지 캐서
삼태기를 봇물 도랑에 설렁설렁 씻어서 가져다 놓으면
저녁 쇠죽을 쑬 때 넣어 주었다.
절대로 남자 아이들이,
엄마들이, 아버지들이
나가지 않았고,
초등학생인 여자아이들이 논둑 밭둑을 돌면서 봄바람에 손가락이 굳어 호호 불기도 했다.
그러니 그 들에서의
추위와 따끈한 온돌은 너무도 따뜻했다.
봄이 일찍 오는 둣 하다.
남편은 극세사 이불을 덮고 양모이불 얇은 것도 덮고 겨울을 났는데 어제밤은
땀을 많이 흘렸다 해서
까는 면 패드도, 덮는
이불도 일흔 생일에
이불껍대기를 짚으로 벗겨 내어 세탁 할 수 있는 것으로 맟추었던 이불로 바꾸어 주었다.
옥상정원은 지심을 받지 못하니 새싹이 올라 오는 것도 늦고
치자,석류나무, 운용매
몇년을 월동을잘 하다가 어느 해는
동사를 해 버린다.
한파가 심한 날 화분 속에서 뿌리가 얼어 버리는 것이지 싶다.
오랜 버릇은 추억처럼 내 몸에 배여 있고,
추억은 문득문득 아련하게 생각난다.
올해 아흔일곱이신
시어머님께서 몇년 전
에미야 너무 오래 산다.
무슨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말씀에 무슨 희망이란 말씀이 목에 걸렸다.
아직은 부모님세대가 계시지만 몇 년 후면 ㆍ우리 세대가 다들 노년을 지나 노인이 된다.
부산 군산 등등의 항구도시는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경제를 착취한 물건을 실어 나르던 일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이 살던 동네가 오늘 아침방송에서 본 아직도 개발 되지 않고
그대로 빈집으로 동네의 골목을 발로 직접 우리나라에 40년 살았다는 60대로 보이는 외국인의 취재로 볼 수 있었다.
나도 부산시절 2층으로 된 목조 집에 바닥은 다다미로 되어 있고,
2층 앞 유리 문을 열면
발코니가 있었던 집에
산 적이 있어 그 빈 집이고 2층집이었던 그 시절의 ㅇㄹ본가옥을 유심히 보았다.
일제시대 때 일본에 군산으로 가면 다 부자가 된다 했던
그 군산의 일본인들이
살았던 동네 골목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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