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무수리과

이쁜준서 2018. 4. 2. 04:58


급한 볼일로 집에 가서 1박을 하고 왔다.

급하게 가게 되어서 기차표 예약을 하니 낮 13:06분 이전 표는 없었다.

배낭 2개를 내려 놓고, 재래시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인도에 즐비하게 있는 상가에 볼일이 있어 갔고,  볼 일을 보고는 인도 난전에서 발가스럼한 머구싹 칼로 도려

낸 것을 사고, 우엉잎을 사고 두부집에서 만들어 파는 두부 1모를 사고, 평소 사 먹던 방앗간에서

포장 된 떡 2팩을 샀다.

떡만 식사 대용으로 해서는 모자랄 것 같아서 두부는 단백질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점심은 기차 역사에서 비빔밥을 사 먹었는데,언제나처럼 별맛은 없었다.

평생 공주과로 산 것이 아니고, 무수리과로 살아 온 사람인데도 먹는 것이 까다롭다.

친구의 사촌동생 결혼식에 우리 팀이 이바지 음식과 폐백음식을 하게 되어서 부산이 결혼식장이라,

사촌동생이 병중이라 같이 가서 폐백상을 차려 주자 해서 갔다.

차려 주고는 엄니께 갈려고 했더니 여동생 말이 나도 바람 쏘이는 것이 좋으니 우리가 가자 하신다고 연락이 왔었고,

동생이 오라는 식당으로 갔더니 높은 층에서 바다가 보이는 식당이었다.

그 때 엄니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은 암도 죽을 때까지는 자기 발로 걸어 다니는데, 이 병은 자기 발로,

걷지도 못하고 아주 나쁜 병이다. 너는 죽을 때까지 이 병은 걸리지 말거라 하셨다.


4남매 맏이 이고, 시어머님도 계시는 집이다 보니, 비단 명절이 아니었어도 결혼해 분가 한 형제자매들도

오고 친척들도 오시고, 형제들은 김장김치도 장류도 다 집에서 가져다 먹었다.

이젠 김치도 장류도 수도권의 큰동서가 종방간의 혼사와 상사가 있을 때,

오면 가져 갈 때는 있어도 이젠 자식들도 가져 가지 않고, 그런 일에서는 해방이 되었다.

엄니께서 그런 말씀 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그래 내 손으로 밥 해서 다른 사람 먹게 할 수만 있다면,

손과 발은 성해서 살아지겠지로 맘 먹었다.


정말로 딸 아이들 집에 가면 즈그들과 함께 나가서 식사를 하고 나서 몇일이라도 있게 되면,

이불 래도 해 주고  냉장고 청소도 해 주고, 밥도 해 준다.

그러니 오나 가나 무수리 과이면서도 먹는 것이 까다로워서  한 그릇 사 먹는 밥이 맛이 없다.


정답, 정답은 문제에 맞는 답이거나 근사치인 답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시험지에 붉은 색연필로 100이라 쓰고 숫자 밑에 두줄의 가로선이 적힌 시험지를 받았을 때,

그 희열은 우리 세대들만이 제대로 알 것이다 싶다.

그 때는 정답이란 말도 제대로 모를 때 였다.


이만큼 세월을 살아 오고 보니 하찮은 것에서 정답이 있지 인생에서는 정답은 없다.

잘 되면 잘 된 곳에서도 틀린 것이 있고, 못 되었다 싶어도 또 잘 된 것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에서는  그 잘 됨도, 못 됨도 없이 죽기까지 살아 있는 것이라,

정말로 정답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죽기 전에 준비를 한다 해도 과연 무엇을 준비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냥 살아 있을 때, 내가 남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따뜻했으면 좋겠다.

죽음은 단절이다. 1초도 허락하지 않는 단절이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준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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