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외롭지 않아야 한다.

이쁜준서 2015. 11. 21. 05:56

 

 

 

낙동강 보에서 담은 저녁 노을

 

 

 

 

 

큰 재래시장에 가면 단지별로 전문적인 상품을 팔고 그 규모가 아주 크고, 불경기에도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단지와 단지 사이의 통로에는 바쁘기라도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뚫고 나가기가 어려울만큼 사람의 물결이 통로를 메운다.

주차장 건물이 있고, 화장실이 있고, 은행 부스가 있고, 음료수와 커피, 꽃, 액자, 인삼등등을 파는 만남의 장소가 있다보니,

작은 벤취가 있는데, 그 벤취는 비어 있을 때가 드물다.

 

그 벤취는 3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곳인데, 옷을 깨끗하게 차려 입으신 할머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친구가 화장실을 가고 할머니 한분만 앉아 계셔서 준서할미도 앉게 되었는데, 그 할머니가 말을 걸어 오셨다.

   (밖에 난전에 음식 장사들이 모인 곳이 있고, 국수, 수제비를 팔고 있고 3,000~3,500원을 하기에)

물 한병 가지고 돈3,000원만 가지면 따신 점심 먹고, 다리 아프면 살방살방 시장 통로 걷다가 여기로 와서 앉아 있으면

사람 구경하고, 또 옆에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옷 구경도 하고, 경노당 가기 싫어서 여기로 출근하듯이 오신다 했다.

용돈이 궁하지 않게 보이는 분이셨다.

 

일흔의 고개를 넘기고도 경노당은 않갈 것이라시면서, 아파트 그늘 좋은 곳으로 모이는 사람들 속으로 나가시던 어른은,

점심 때면 점심 먹으러 다들 집으로 들어 가고 나면 점심 먹고 다시 나가면 사람들이 오전처럼 그렇게 다시 모여 지는 것이 아니고,

비슷한 연배의 분이 경노당 가자고 권한다면서 70대 중반을 넘기시고는 경노당으로 출근을 하시게 되었다.

경노당 않 간다던 이유는 나도 늙었지만 늙은이들이 몸을 깨끗하게 씻지 않아서 버스에서나 병원에서 옆에 앉으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서

갈 생각이 없으시던 분도,

 

맏이와 살다가 지차 자식들 손주 봐 주고, 살림 해 준다고 와서는 손주들은 자라서 잔 손 될 일은 없어지고,

맏이 집에서 나올 때는 지차 자식이 끝까지 모신다고 해서 맏이 자식 맘 아프게 하고 나왔으니 다시 받아 주지도 않을 것이고,

또 그만큼씩 외로워져서 사람 찾아서 경노당으로 가시고 큰 시장으로 나와서 물건을 살 때나, 노전 음식을 먹을 때 말고는

반겨 주는 사람 없어도 사람 구경하러 나오시는 것이다.

경노당에 가면 뜨신 점심 해서 먹고 온 종일  비슷한 연배끼리 모이신 분들이 남 이야기도 듣고, 내 이야기도 하고,

감기몸살 하느라 몇일 못 가다 나가면 내일 처럼 살갑게 걱정 해주고 커피 한잔 따근하게 따근한 물 주면서 챙겨 주는

곳이다.

 

사회는 용도폐기의 주기가 빨라 졌다.

사람을 용도폐기라 하면 참 삭막한데, 우리들 사회 현상은 그렇다.

아무리 학식과 경험과 경륜이 쌓여도 현직에서 떠나면 연락해서 만날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이 사회에서는 노인은 버거운 짐덩어리라서 선반 위에 얹으려 한다.

살펴 보면 지식이야 차고 올라 오는 사람들이 더 충분한 능력이 있겠지만, 노인들의 지혜까지 사장 되는 것 같다.

 

사람은 외롭지 않아야 한다.

노인이 되어 가면서 혼자이지 않고, 사람 구경이라도 해야 하고, 큰 시장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람 구경도 하고,

난전에서 여러 사람들과 모여서 점심 식사도 하고  집에 돌아 갈 때는 생선 한마리, 상추 한줌이라도 나 스스로 사기도 하고,

간혹 낯선 사람들이나, 생선이나 나물을 사면서 파는 사람들과도 말을 나누고,

사람들 속에서 사람 구경하면서 살아야 정신건강을 해 치지 않는다.

 

경노당에서 오후에 집으로 돌아 가시면, 손주들은 다 자라서 대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고,

직장으로 출근한 자식들도 돌아 오지 않은 빈집으로 돌아 가지만, 낮 시간 경노당에서 뜨신 점심 해서 같이 먹었고,

같이 이야기 하면서 지냈으니, 집으로 가서는 더 이상 식구들 식사 챙길 것도 없고, 혼자 당신의 식사 챙겨 드시고는

물 한컵, 요강단지 챙겨서 당신의 방으로 들어 가시면 나머지 식구가 오던 말던 상관하지 않는다 하신다.

왜 요강단지 챙기시느냐고 했더니, 그러지는 않겠지만, 화장실 간다고 들락거리면 누가 반가워 할 것인데, 싶어서

전화 있고, TV있고, 물 한컵 있고, 요강있고, 하면 나갈 필요가 없다 하셨다.

그 어르신께서도 결국은 한 집에 살아도 섬을 만드는 며느리의 냉대에 혼자 나와서 사시지만, 낮에는 경노당에

가시면 되고, 밤에는 눈치 않 보는 내 집이 있다 좋아 하신다.

 

돌아 가실 때의 죽음복 탈라고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셔서 장수경 넘기시면서 108배 하신 던 것은 십년도 훨씬 더 흘렀고,

이제는 무릎이 아퍼서 그냥 장수경만 외우신다고 하셨다.

종교가 있어야 될 것 같다.

아무리 잠 재워도 욱하고 올라 오는 울분 같은 내 마음 내가 다스리기에는 항상 신 앞에서는 늘 자신이 죄스러우니....

 

나는 나는 아는 것도 많고, 연금도 나오고, 잘 가르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식도 있고, 하니 나는 예외일 것이다 싶어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현 세상이 수명을 늘려 놓아서 오래 산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이기도 하다.

그 오래 사는 것이 건강해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고, 아파서 약물 치료라도 받으면서 오래 살고, 존재 자체가 점점 선반 위에

얹어지게 되고, 잊히게 되는 것이라서......

 

사촌 언니가 사는 아파트에도 경노당은 가지 않는 70대부터 단 한분이시지만 90대 노인도 모이는 장소가 있다 했다.

90대 안노인분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까이서 만날 친구도, 전화 통화를 할 친구가 없다고 하셨다고,

다들 요양원으로, 이 세상 소풍길 마치고 본래로 돌아 가버려셔서.(자식들은 바쁘다고 오는 전화만 받으신다고)

 

경노당은 맞지 않아서 아파트 노상 쉼터로 나오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