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까치밥을 남기는 것과, 고스레를 하는 맘

이쁜준서 2015. 11. 12. 13:37

 

 

 

예전 준서할미 어린아이 시절 봄철 농사 일이 시작 되면, 이른 봄 꽃샘 추위에 일년 내내 거름 더미에 발효 해 두었던

작은 무덤 보다는 더 큰 퇴비를 쇠스랑으로 쿡 찍어서 끌어 내면 퇴비 거름 더미 속은 발효 하느라 김이 올라 왔었습니다.

그 때 그 냄새 싫다 하지 않았습니다.

 

지게에 거름을 퍼 담아서 들에 내는 일은 하루 날 잡아 퍼득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몇날 몇일을 지겟짐을 져다,

들에 뿌려 놓고는 하루 날 잡아서 소를 몰고 가서 쟁기질을 했었지요.

 

그 때는 집에까지 와서 점심을 먹고 가면 일이 덜 되는지라 참도 내어 가고 점심도 내어가서 꽃샘 바람 쌀쌀 하게 부는

논둑에서 점심을 잡수셨지요.

기계화가 되지 않아서 논 스무마지가가 조금 넘었는데, 5촌아제가 우리 집 사랑에서  자고 묵고 일 손을 거들었기에,

두 사람분의 점심이나 참을 이고 갔었습니다.

그러면 참을 먹어도, 점심을 먹어도, 항상 먼저 조금 뜯어서 고시레 하면서 멀리 던지고 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린아이인 우리들이 소풍을 가서도 먼저 고시레부터 하고 먹었습니다.

그 고시레 한 것을 새가 먹게 되던, 들쥐가 먹게 되던간에 사람 혼자 먹는 것이 아니고,

아마도 보이지 않는 생물들과 그 생명들을 돌 보는 신들에게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였지 싶습니다.

 

예전 준서할미 어린시절에는 다른 집에서 떡 한넙더기 가져 오면 할머니가 계셔도 먼저 잡수시는 것이 아니고,

집에 따라서 작은 항아리에 쌀을 넣어서 가을 햇곡이 나오면 시월달에 고사를 지내고 햅쌀을 갈아 넣었습니다.

그 신주단지가 있는 집에서는 신주 단지 밑에 놓아 두었다 할머니가 먼저 한 입  잡수셨고,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신주단지가 없는 집에서도 실건 위에 얹었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을 때는 할머니가 돌아 오셔야 맛을 볼 수 있었지요.

 

그 뿐이 아니고, 집안에서 동지 팥죽을 끓여도, 혹여 시루떡을 하거나 조상신께 대접하는 의미로 그렇게 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미신 같지만, 어찌 생각하면 조상을 섬기는 것이라 일상에서도 절도가 있게 되는 것이였지 싶기도 합니다.

먹고 사는 것은 대다수가 해결이 되었지만, 막 살다보니 자식 교육이 제일 어려운 난제가 된 세상입니다.

 

준서할미가 어린아이 시절의 고향에서는 밤나무가 있는 집이 딱 한집 뿐이였고,

지금은 배 과수원이 생긴지가 20여년이 넘었지 싶은데, 그 때 그 시절은 사과,배, 등의 과실 나무는 한 나무도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마당에 뒤란까지 둘러 가면서 4~5그루가 있었지요.

그러니 어느 들판에 밭둑에도 감나무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우리동네는 어쩌다 도감이라고 지금의 대봉감 모양처럼 생긴 것인데 지금의 대봉감보다 크기가 작은 감나무,

참감이라는 것, 납작한 감나무 등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시절 감나무는 요즈음 감나무처럼 그리 까만 높이는 아니였습니다.

그러니 감을 따는 것은 높다 해야 감나무에 올라 가서 장대를 가지고 딸 수 있었는데, 다 따지 않고,

까치들(새들) 이 먹으라고 까치밥이라고 몇개 남겨 두었었습니다.

그리 두면 홍시로  된서리가 오면서 홍시가 되고, 새들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배 고픈 시절이라도 들의 새들도 생각하는 자연과 동화 된 그런 생활을 사셨던 것입니다.

 

밭에서 콩을 베어서 군데 군데 떨어진 것을 헝겁을 대고 기운  이불호청이었던 큰 보자기에 사서 지게로 옮겨서

말린 콩대를 도리깨질을 해서 콩 타작을 했었지요.

밭에도 미리 익은 콩들이 떨어져 있어도 대강대강 줍고 맙니다.

새들의 먹이가 되라고 그리 하셨지요.

 

예전 우리들의 할머니세대, 어머니 세대분들은 마음의 폭이 커셨습니다.

 

 

 

                                                                                              

하동  산 대두입니다. 20Kg

10만원을 주었습니다. 산지 가격이고 우리 도시에서 산다면 더 하지 싶습니다.

 

 

이만하면 좋은 콩입니다.

준서할미는 팥이던 콩이던 콩 종류가 들어 오는 날 한 줌씩 손 바닥에 놓고 돌, 반쪽등의

것을 골라 냅니다.

그러고 씻을 때 또 조리로 콩을 일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