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에서 외국에서 온 억새 종류를 심어 가꾸는 것인데 이름은 모릅니다.
우리나라 억새보다 덜 억새스럽습니다.
70년대는 배 고픔에서 거의 빠져 나왔다 해도,
그 시절에도 수확이 많은 것에 치중한 통일벼란 새로운 벼 품종이 나왔고, 그 쌀은 일반 쌀에 비에 가격은 헐하고,
미질은 떨어져도 그 쌀은 국민 배고픔에 지대한 공을 했다 싶습니다.
밥을 하니 미질이 떨어지니, 그 쌀로 떡국을 빼러 동네 시어머님 친구분들깨서 시내버스 구간 요금을 더 내는
시골로 가셔서 5되, 한말의 쌀로, 떡국을 뽑아 오시기도 했었던 시절은 지금에 생각해 보면 거짖말 같습니다.
준서할미가,
3~4년 전만 해도 집에서 쌀을 불구어서, 떡국거리를 그대로 빼 와서 이웃과 뜨근뜨근한 가래떡 나누기도 하고, 적당하게 굳혀서
썰기도 하다가 그도 번거롭다고, 방앗간 기계에 썰어 오다가, 이제는 굳이 설 명절만 떡국을 먹는 것이 아니고,
김장을 해 놓고, 쌀쌀한 날 한 봉지 사 와서 먹게 되니 명절이라고 더 많이 할 필요도 없게 되어 명절에도 2봉지 정도만 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밥은 보리쌀을 놓고, 하는 것이고,
떡국은 보리밥보다는 돋게 먹는 것인데, 떡국을 뽑아 놓으니 씹히는 식감이 일반미 떡국과는 밥보다 더 차이가 나서
통일벼로 찧은 쌀로 떡국을 뽑은 것은, 한번으로 끝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는 그 떡국으로 펑튀기를 해서 간식이 넉넉 했었습니다.
해마다 준서할미는 경북지방의 한 농가에 햅쌀을 주문해서 먹은지가 20여년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도시에 살고, 아이들 아버지만 고향으로 가서 모내기 때도 기계로 삮 일을 하고, 수확절에는 콤바인으로
벼 수확을 해 주는 일 하는 것이 수입원이고, 그러니 자기 농사는 많아도 농비가 절약되어서,
도시에 딴 살림을 하고 두 아이들 대학교 졸업까지 마쳤습니다.
쌀을 가지고 올 때는 메주 끓이느라 짚단이 필요해서 부탁을 하곤 했었는데, 올 해는 오늘 쌀 주문만 하고
짚단 부탁을 생각지 못했는데, 짚은 없어도 되냐?고 물어 주어서 메주 끓일 때 아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찹쌀과 일반미가 20Kg에 5,000원 차이가 났습니다.
70년대만 해도 찹쌀을 포대기에 사지는 못 했고, 식구들 생일이라도 들면 됫박 찹쌀을 샀었고,
음력 정월 대보름 찰밥을 할려고 찹쌀을 역시나 됫박 찹쌀로 샀었지요.
찹쌀을 집에 넉넉하게 준비하면 잡곡을 여러가지 섞어서 먹으니, 찹쌀을 밥할 때마다 섞어서 밥이 부드럽게 하고,
때때로 찰밥이 먹고 싶으면 찰밥도 하고, 동지팥죽, 호박죽등을 쑬 때도 편합니다.
가을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풍성한 계절입니다.
김장하실 젓갈을 드리겠다고 사돈댁에 전화를 드렸더니, 들깨와 팥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직접 농사 지으신 콩 2말로 쑨 메주로 올 해 장을 담으셨다면서 된장도, 간장도 맛나다 하시면서 주시겠다 하셔서
우리는 올 해 장을 담지 않아도 먹을 양은 되는데도, 맛난 된장에는 언제나 맛보고 싶어서 부탁도 드렸습니다.
딸래미가 우리 어머님 된장은 특별하게 맛나다고 했는데, 드디어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정을 나눕니다.
형제들과도, 친구들과도 사돈과도 이웃과도 그렇게 지냅니다.
사람 사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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