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70을 바라 보는,부부가 사는 모습

이쁜준서 2014. 10. 28. 06:30

 

 

 

준서외할아버지와 준서할미가

자식들을 기르는 맘으로 사랑으로 봄, 여름, 가을을 키웠던

화분을 일찍 들였습니다.

화분들이 월동을 할려고 들어 오면 숫자가 많아서 옆에 옆에 붙여 놓으면

이쁨이 묻혀 버려서 이 두 화분과 해피트리를 어제 들였습니다.

꽃 피는 나무와 초화들을 기르는 것을 서로가 좋아 합니다.

 

 

 

 

준서외할아버지와 준서할미는 자식들이 와 있어도 무거운 것을 들거나 일을 한다고 거들어라 하지는 않습니다.

아직은요.

10년전까지만 해도 옥상에서 큰 화분에 꽃이 피면, 현관 앞에 그 화사한 꽃이 보고 싶어서,

뒤로 돌아 내려 오면서, 화분보다 밑의 계단에 준서할미가 서서 몸에 화분을 딱 붙여서, 한계단씩 내렸지요.

그 때는 준서외할아버지는 무거워도 번쩍 들고 내려 왔는데, 핀 꽃이 벽에 닿아서 떨어지는 것이 있어 아까워서 그랬었지요.

 

따뜻한 실내로 들여야 하는,

자스민나무, 목 베고니아, 브겐베리아 큰 화분을 어느 겨울 날 실내로 들이지 않는 것으로 퇴출을 했습니다.

들고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요.

큰 화분의 철쭉 두 나무와 큰 화분의 함소화는 가을도 아닌 여름 어느 날 한꺼번에 시름 시름 앓더니 고사 했고,

아끼던 나무꽃들이 이렇게 저렇게 고사 했었지요.

봄이면 옥상 정원이 큰 나무에 심겨진 꽃이 피어나서 참으로 화사 했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꽃이 많다 해도 그 시절은 큰 화분의 나무꽃들이 피어 나면 격이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지요.

체력의 한계가 옥상에서 피는 꽃들의 종류를 옥상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바꾸어져 갑니다.

꽃이 좋고, 월동을 하는 명자나무가 앞으로는 옥상 정원의 주종류가 될 것입니다.

 

일 무서운 줄 모르고 했었는데, 이제 일이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 때는 번쩍 드는 힘이 있어 들고 나서 허리가 아파서 애를 먹으면서도 다 준서외할아버지만

하게 할 수 없어서 준서외할아버지 않 볼 때 번쩍 들고 했었는데, 올 해부터는 원천적으로 들 수가 없어졌습니다.

친구네 밭에 고구마를 캐서도 캘 때는 거들어 놓고는 포대기 들어 내는 일은 도우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것을 원천적으로 들지 못해서요.

 

초 가을에 풀을 베어 내었더니 쑥이 부들부들 하게 자라는데도, 일 손이 돌아 가지 않아서 뜯어 오지 못했다고

쑥도 뜯고 고추도 따고 가자 해서 친구네 텃밭으로 갔었습니다.

실상 준서할미가 가지 않으면 친구가 그 바쁜 손에 해 와서는 고추도 줄 것이고,

쑥도 어찌 어찌 혼자 뜯어서는 떡을 해서 떡을 얻어 먹을 것이라 가야 하기도 합니다.

 

말이 텃밭이지 밭 전체는 700평이 조금 넘는 곳이라, 500여평에는 나무를 듬성 듬성 심어 놓았고, 그 나무 심은 땅에는

군데군데 쑥이 소복소복하게 연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고추를 따고 쑥을 뜯고 했더니, 그 담날인 어제는 팔도, 다리도 뻐근 한데,

들에서 얻어 온 것은 하나 하나가 다 일거리 였습니다.

고추도 아기고추와 매운 것을 골라 내어 찜고추는 찜고추대로 쪄서 널었고, 매운 고추는 씻어서 소금물에 삭혔고,

쑥도 골라 내어야 하고, 한포기씩 보이는 민들레와 고들빼기도 뜯어 왔고,

옥상에 오르고 내리는 일이 많았는데,

올려다 너는 일도, 저녁에 갈무리 하는 것도 준서외할아버지가 다 해 주었습니다.

 

보기에 고단 해 보였던지 거실에서 일을 했는데, 오전에 시작한 일이 어느 듯 저녁 때가 되었고,

빗자루로 쓸어 내고 났더니 청소도 준서외할아버지가 다 해 주었습니다.

알아서 도와 주었기에 한결 수월 했습니다.

도와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은 기껏해야 두어번인데,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알아서 도와 주었습니다.

 

 

들에 갔다 오면서 열쇠를 챙긴다고 쑥 뜯어 담은 천 자루에 넣었는데, 집에 오니 열쇠가 없었습니다.

준서외할아버지와 연락해서 집에 들어 가기는 했는데,

하룻밤을 자고 난 어제 냄비도 태우고 어디 두었는지 찾는 것이 다반사이더니 이젠 열쇠까지 잊어버린다 싶어서

잃어 버려도 찾을 수 있게 끈이 있게 건사하지 않았다고 맞는 말을 하는데도 듣기 싫었고,

아직은 열쇠에 끈을 달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싫고......

 

결혼 할 때 앞으로 열쇠 잊어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 했나? 뭐 살다가 잊어 버리기도 하지 뭐....라고 했더니

하도 말도 않되는 말로 대꾸하니 서로 웃었지요.

열쇠는 쑥 자루를 내리면서 빠졌든지 친구 남편이 주워 놓으신 것을 찾아 왔고,

준서외할아버지가 떨어지면 표가 나게 열쇠고리를 큰 것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사실은 싱간 하기 싫어서, 

준서할미가 할 말이 없으면 엉뚱한 말을 해서 웃고 넘기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70을 바라 보고 살아 가는 부부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완이 되어 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