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친구가 아직 채 두 달도 안 된 아가가 와서 낮시간
아가와 둘이서만 지내는 것이
채 15일이 못되었습니다.
그런데 맘으로부터 기쁨이
친구의
얼굴이 화사해졌습니다.
그런데 저그 할머니가 안아주는 포근함이 다른지 알아채는 것 같습니다.
마주 할머니 보고는 웃습니다.
안아주는 느낌이 달라서 그럴겁니다.
아기는 와 있는데 잠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라.
( 아들 집이 근처라 아기는
점심무렵이면 할머니집으로 와서 저녁 식사 후 저그집으로 갑니다.),
내가 잠시 업어 줄 터이니라
해 두었습니다.
아기를 따뜻하게 업어 줄 생각입니다.
저는 어려서도 아기를 너무 좋아해서 학교 갔다 와서
소 풀 먹이고 돌아와서도
아니면 가까운곳일 때는 업고도 갔습니다
사촌아기 동생을 업어 주었습니다.
오늘 방금 전 이란유목민
후예들 한 가정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큰딸은
이 가정의 중심축입니다.
아버지 사촌의 가정에
엄마가 없어서 볼일이 있으면
3살 정도의 아가와 6살 정도로 보이는 쌍둥이 남자아이들을 이 질녀가 학교 갔다 온 시간대에 멀리서
차 타고 와서
두고 가도 식사도 하게 하고,
그 아기를 꼭 붙어서 데리고 있고,
자기 동생 3남매에게도 잘해 줍니다,
오늘 방송에서는 큰 딸 모르게
아버지가 도시로 가서
큰딸의 사진이 들어 있는 주문 했던 큰 케이크를 찾아와서
멀리 있는 할아버지와 삼촌 숙모가 생일 축하 하러 왔고,
생일축하 케이크는 할아버지가 잘라서 나누어 주고.
넉넉하지 못한 중에도
각자 선물도 하고,
남동생은 지방민요를 부르고.
여동생은 춤추고,
넉넉하지 않아도 생일 축하를 성대하게 했습니다.
넉넉하지 못해서 더 화려한
생일 파티보다 더 빛이 났습니다.
생일을 앞두고 부부싸움을 해서 아이들을 울적하게 했는데,
아이들의 할아버지와 삼촌이
그 전에 왔다 가고,
아이들 아버지가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했고.
겨우 생일을 계기로
화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도 있었고,
청소년기를 거쳐서 성인이 되어 결혼도 했고,
저처럼 결혼이 큰 희생이 되었던 시절도 건넜고,
우리 아이들이 저그들도
엄마 되어서 살고 있고,
앞으로 세월에는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왔던 이전은 어떤 곳일까?
그곳이 있다면 오지 못한 영혼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 간 다음은 아무도 그곳을 모르는데,
철 모르는 아이처럼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평생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힘든 일이기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치과 치료가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했습니다.
4월까지에 1차 치료가 끝났고,
어제 다시 갔다 왔습니다.
소염진통제가 있어서.
어제부터도 아프지는 않은데
맘이 맹랑꼬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