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카테고리 없음

기억과 몽상이란 책을 읽고

이쁜준서 2018. 8. 23. 09:57


' 황령산이 보이는 언덕에서' 는,

 ' 기억과 망상' 이란 책의 저자이신 윤혁 작가님의  ' 작가의 말'  끝의 짤막한 한 줄 글에 적힌 글이다.

황령산은 부산에 있다.(높이 427m)

그 산 밑으로 국민학교도 있었고, 야학으로 고등공민 학교도 있었고, 6.25 참전용사이신 상이군인들의

국가에서 분양해준 작은 집들이 들어 찬 곳도 있었다.

하물며 국민학교와 마주 미군과 한국군이 있는  부대도 있었다.


산 계곡에서는 빨래터가 있어서 빨래를 하러 갔었고,  빨래터에는

이불호청을 뜯어서 가 계곡물에 빨래를 해서 삯을 주면 큰 백철 솥을 걸어 놓고 삶아서 주기도 했던 곳이다.

빨래는  산에 나무들이나 키 큰 풀들에 널었다 말려서 가지고 왔다.

그 빨래터에도 자기 손으로 빨래를 하는 사람, 삯을 받고 빨래를 해 주는 사람,

그 황령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계층처럼 그렇게 같은 듯해도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빨래를 하러 왔다.

아마도 산 중턱이였지 싶다.

엄마따라 자주 갔던 곳이였다.

어느 설날이었다.

이모, 외삼촌의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7살 아이도 데리고 나선 목표지가 황령산 정상이었다.

7살 아이도 이모 외삼촌 친구들을 따라서 가다보니 산 정상까지 갔었다.

그런데 산에 올라가니 산 정상에서 바다가 훤하게 보였다.

7살 여자아이는 바다는 해운대, 광안처럼 평지에 버스를 타고 가면 있는 곳이였는데,

산에도 바다가 보이는 사실이 신기했다.

반대편 산 밑으로 내려가면 바다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고, 산에 닿아서 바다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윤혁 작가님은 오랫동안 다음블로그에 블로그에서는 보기 어려운 인문학적 글을 올리신 분이시다.


http://blog.daum.net/yoont3/11302581

윤혁 작가님 블로그 바로 가기 입니다.

블로그에서 그 분의 글은 아주 수준이 높아서 나는 가끔 가서 읽기는 했지만 대부분 댓글은 달지 않았다.

나의 수준이 그 글에 미치지 못했기에,

닉이 ' 언덕에서' 님이셨는데, 이번 윤작가님의 소설 ' 기억과 몽상' 이란 글을 읽으면서 어렴픗이  닉이 짐작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황령산을 올라 정상까지 가면 바다가 보이는 딴 세상이 였다.

그러나 그 언덕의 기적 같음은 한 순간에 끝나고 우리들은 또 다시 찌지고 볶고 하는 자기 삶터로 내려 와

살기 마련이다.

황령산을 힘들게 오르고 또 올라가는 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의 경치가 꿈인지?

다시 내려와 현실로 돌아 와야하니 아마도 황령산 언덕을 올라가서 본 바다가 꿈이 아닐까?

우리가 동경하는 언덕 위에서는 기적 같음이 있다 한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언덕아래로 내려 와야 하는 것이다.


폭력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절대로 어겨서 않되는 것이 아니고, 절대로 지켜져야 하는 가치관들이 있다.

어린이집의 3~4살 만으로 치면 아직 2살도 채 되지 않은 아기들이 어린이 집에 있다.

그 아기들은 잘 키워져야 한다.

그런데 그 아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것도 그 아기들에게는 엄마 나이대이고, 아니면 50대도 있었으니

할머니대이기도 한 사람들이 아기들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아기가 사망에 이르게도 되고, 받은 상처가 트라우마로,

온전한 정신을 가지지 못한체 살아 갈것 같아서 참 안타까운 것이다.

이 세상이 절대로 지켜져야 하는 가치관마저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박철수씨의 생은 일평생이 청소년기를 대학생, 군대, 취직을 해서까지,

폭력에 시달린다.

그 일생의 폭력은 내가 작가님보다 다소 나이가 많아서 다 보아 왔고, 그 폭력의 현장을 경험한 세대이다.

참으로 가난한 세월이었다.

그 시절 직장은  가족들의 먹고 사는 것이 달렸고, 살다보니 청소년이 된 자식들 공부바라지를 해야 하는 것이

달렸고, 그 직장이 내 목숨줄 같은 곳이였다.

그 생사여탈을 쥔 갑의 자리에서 적든 크던 권력을 쥔 자들은 폭력을 휘둘러도 을은 참고 지내야 한다.

주인공 박철수씨는 직장을 많이도 옮겨 다닐 수 밖에 없어서도 가는 곳마다 폭력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어디를 가도, 너무도 폭력을 당 해 와서, 그 가해지는 폭력에 분노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 현상이  가장 소름끼치는 것이라 했다.


폭력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자기보다 조금만  아래 사람이라면 직장에서 받는 폭력적인 언사도, 때론 폭력적으로 상해를 입혀도 참아 내어야 했다.

하다 하다보니 직장에서 후배한테도 폭력을 당하게 된다.

나는 여자이다보니 폭력적인 사회에서 직장생활도 했고, 여자라서 남자들에게 더 무시를 당하기도 했고,

심지어 누운자락 어린 남동생이 잠 자고 있는데, 그 머리 위로 지나갔다고, 혼이 나기도 했다.

주인공 박철수씨는  자라면서 청소년시절, 대학생 시절, 군입대, 현재의 삶의 모습으로 미리 정해진 것일까?

내가 노력하면 바뀌는 것일까? 라 갈등한다.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사는 것은 아니다 싶다.

그렇다면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될 수 있는, 저 세상은 존재하지 않은 곳이 되기에.

그렇다고 내가 노력한다고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그에 젖어 이미 관형화 되어 있다고 본다.

박철수라고 대표된 우리들은  대다수가 그렇게 살아 왔고, 그렇게 살고 있다.

박철수는 무던히도 그 폭력에 시달리고 참고 살아 왔다.

사회와 연관되어 살아가는 시기에는 그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나 정년퇴지직을 하고  그냥 혼자서 즐기고 살았으면 한다.

작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아서 사는 모습이기를 바란다.

박철수씨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