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앉아서 식물을 검색하기도 합니다.
어제는 귀농을 하셨다는 분이시고, 준서할미보다는 나이로는 한참 적은 분이였습니다.
농사도 짓지만, 꽃밭을 힘겹게 가꾼다고 했습니다.
어린시절 도시에서 자랐고,
시골에 할머니가 살고 계셨는데, 그 시절에는 밭에 작물을 키워야 하는 시절에 밭 한떼기를 꽃밭을 만들어
꽃을 키우고 게셨다 했습니다.
도시의 손주들이 올 때 보라고 그렇게 하셨다 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귀농을 했고,
자기 자신도 그분의 할머니 하신대로 살게 되더라 했습니다.
작정하고 꽃을 기른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 지더라 했습니다.
아직은 손주들이 있는 나이도 아니고, 자식들이 청소년정도 인듯 했는데,
자기 자신은 자식들의 영혼을 위해서 농사일에 자기 할머니처럼 큰 꽃밭은 아니어도,
힘에 부치는 꽃밭을 만들고 가꾼다 했습니다.
지난 사진 중에서
준서할미는 그런 깊은 마음으로 꽃을 가꾸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와서 한옥에 살 때 흙마당 한켠으로 화단이 있고, 그 시절에야 아이들도 책보따리 들고,
한차례 책보따리 들었던 시동생, 시뉘들 결혼도 시키고, 꽃을 돈주고 살 여유는 없었습니다.
큰 아이가 초등 5학년 때 국화를 키우기 시작 했습니다.
하나 하나 얻어 들인 국화가 22종이었고, 대국, 소국 삽목시기 다르게 큰 화분들이 가을이면,
마당에 즐비했고, 그 때는 뒷집이 교회이었는데, 교회는 나기지 않았어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화분 중에서 골라서 2개를 보내 드리고, 대문을 열어 두었습니다.
그러다 이사를 오면서 마당은 주차장이고, 옥상에서 식물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많던 빈화분도 다 버리고 왔는데, 와서 처음에는 관엽식물을 사서 현관앞에 놓고 기르다가,
하나 둘씩 늘어나니 그 이듬해는 옥상으로 화분이 올라가고, 그렇게 식물들이 늘어나서 옥상정원이라고
부르게 될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냥 옥상 정원이 있어 같으면서도 하루 하루가 같은 적이 없는 꽃피는 식물을 가꾸면서,
얻는 행복이 행운이다 싶을 뿐입니다.
아버지 고향에서 손주들을 생각해서 밭을 꽃밭으로 만들어 도시 손주들이 오면 보라고 해 주셨다 하고,
그 손녀딸은 귀농을 해서 힘에 부치는데도 내 자식들의 영혼을 위해 앞으로 내 손주들의 영혼을 위해
꽃를 가꾼다는 분도 있다는 것이 감동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지극정성으로 내 자식들의 영혼을 위해 꽃을 가꾸시니 그분의 자식들은 맑은 영혼으로 성인이 되어 갈 겁니다.
지난 사진 중에서
지난 사진 중에서 찾아 올린 이 사진들의 풍경을 보면서
맘이 정화 되는 것이였다.
내가 꽃을 가꾸는 것에는 내 맘을 정화 시키는 그 시간들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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