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서 수도권 산후조리원으로 가서 출생 18일(?)에 지방 우리 집으로 데려 왔다.
긴 시간 승용차를 타고 오는데, 내가 안고 왔고, 오면서 3번 휴계소에 들려 기저귀도 갈고, 우유를 먹이고 했다.
서행을 했기에 보통의 편도 오는 것보다 2시간 더 걸렸다.
조리원도 딸이 사는 도시에, 사돈댁이 사시는 곳은 조리원에서 가깝기조차 했지만, 친정어미인 나만큼 딸이 편할까? 싶어서 데려 왔다.
산후조리도 100일 2일전까지 해서는 사돈댁에 데려다 주었다.
조리원에서 데려 올 때보다는 아기가 100일 가까이 되니 몸에 힘이 생기고 고개는 완전히 이기니 안고 가도 덜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아기를 데리고 먼길 운전에는 조심 또 조심 해야 했다.
사돈댁에 갔더니 성의껏 차림 밥상에는 육, 해, 공군 다 올라 와 있었지만 우리가 먹은 것은 밥 반공기가 넘어갈 반찬 정도였다.
그새 정이 든 아기를 두고, 아직은 산후 끝인 딸을 두고 오니 다시 태우고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
딸아이 생활 근거지이니 얼마간 시댁에 있다가 산후휴가 기간이 끝나면 아기는 남고, 딸은 즈그들 집으로 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하여간 섭섭했다.
그 때 인생이야 살만큼 살았지만, 할머니로서는 신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일은 내가 다 했는데, 그냥 할머니라 불리는 것은 사돈이고, 왜 외할머니라고
글자 하나 더 붙여서 불려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준서할머니라 부르면 친할머니가 있으니 그것은 외할머니인 나를 부르는 칭호는 아니다 싶었다.
준서 육아일기를 적고, 블로그에 포스팅 속에서 준서외할아버지라 하고 나를 준서할미라 칭했다.
작년 낯선 분의 댓글에 준서외할아버지와 준서할미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고.
이번 둘째 딸아이 산후구완은 사돈과 내가 교대로 하기로 했다.
사정이 생겨서 사돈과 함께 2주를 보내게 되었다.
평소에 어머니라 부르던 사위가 칭호 정리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느 날 장모님이라 하더니, 어느 날 저희 어머니라 사돈을 칭하기도 했다.
나야 장모 자리이니 장모님이라 해도 되고, 자기 어머니를 저희 어머니라 해도 상관이 없는데, 사위는 이래 저래 곤란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자기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라 부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칭호란 어린 아기들도 즈그들 나름대로 정리가 되는 일이다.
한번씩 내려오는 친가이던, 외가이던 증조할머니가 계시니 어느 날 왕할머니라 부르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
어른들이 시킨 것이 아니고, 즈그들 생각에도 할머니보다 더 높다 싶다어서 그렇게 부르게 된것처럼,
친구는 외손녀가 친가, 외가가 같은 도시에 살아서 자주 양가를 다니니,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할머니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할머니들의 이름 끝에 할머니를 붙이더라 했다.
준서는 첫돐이 지나고 몇개월 후 나에게로 왔었다.(친가에서 있다가)
다섯살 1월에 즈그 엄마, 아빠가 데려 갔고, 유치원에서 들어 갔고, 방학이면 우리집에 데려다 놓았다.
친가 할머니와의 유대감이 없었다. 명절에 , 친가에 일이 있어 아주 가끔 갔었으니까.
친가에는 고모들이 있어 고모집이고, 부를 때는 할머니라 부르고, 누구에게 친가 할머니를 이야기 할 때는 고모집 할머니라 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3학년까지는 그렇게 불렀다.
스스로 고치는 날이 있겠지..... 가까이 살아도 몇번 만나는 기회가 밖에 없고, 우리집에는 방학이면 와 있으니 친근감이 있으니,
우리를 할아버지, 할머니라 불렀다.
3학년 여름방학 때 와서는 이야기 중에 친할머니라 불렀다.
언제부터?라 물었더니 친구와 이야기 하는데 고모집 할머니라 했는데 친구가 고모집 할머니는 어떤 할머니냐 묻더라 했다.
그 때 미안한 맘이 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친할머니라 부른다 했다.
아이들은 어리거나 초등학생이 되거나 즈그들의 맘이 시키는대로 부르는 것이다.
둘째 사위는 아기가 말을 하면, 어머니(나)를 외할머니라 아기가 부르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웃고 들었다.
김장하러 집에 갔을 때 남편에게 이야기 했더니, 자기에게 외갓집은 늘 푸근하고 정겨운 곳이 였고,
청소년기까지도 방학이면 외가에 가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특별하게 우리 형제들을 챙겨 주셨다고.
외할머니는 살아가는 중에 보너스처럼, 난로처럼 그런 분이셨다고.
외할머니는 친할머니보다 더 정겨운 분이신데, 외가는 그런 곳인데 괜찮다고 했다.
아~하 남편은 외가를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들이 외가가 되는 것이 손주들에게 그런 역활이었으면 하는 구나라 싶었다.
첫째 딸의 외손녀 준서를 키우면서 외할머니란 칭호가 맘에 마뜩한 것이 아니였던 신병 할머니가,
그간 세월에 준서는 중학생이 되어 있고,
둘째 딸의 외손녀는 태어난지 겨울 두달이 지났다.
몸은 어깨, 허리, 다리 결리지 않는 곳이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일어나서 아픈데도, 아침에 아기를 안으면서는 아픈 것도 잊게 된다.
나는 본시 외할머니이고, 나를 둘째 딸의 이 아기가 외할머니라 불러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노병 할머니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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