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여운

이쁜준서 2017. 10. 11. 04:10


이 신새벽에 산 속 절간에서는 그 더 넓은 자연속에서 풍경소리가 날터인데, 바람이 숲을 지날 때 나는 더 넓고 깊은 소리중에서,

맑게 들릴 것인지가 궁금해 집니다.

자연이 넓으니 그 소리는 묻힐 것 같고 맘 속의 소리의 여운로 남아, 그 소리는 도리혀  절집에서 신 새벽 잠 깨어 있은 모든이의

살아 온 날들이 여운으로 흔들리지 싶습니다.

30대 네살아기의 젊은 에미였던 시절에 41개월차 아기를 친정 작은어머니께 맡기고  15일 정도 도시의 절집에 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도시라도 주변보다 좀 높은 곳이고, 절집은 정갈하고, 밤이면 정한 시간에 소등을 해야 하고, 신새벽에 모두들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 도량을 도는 것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리고는 큰스님의 법문 시간이 있고, 예불시간도 있고, 아침은 언제나 흰죽을 먹더라구요.

다 몸과 맘을 맑게 하는 것이였다 싶은데, 그 때는 막막한 심정으로 절집에 갔으니 절집 하는대로 따라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심신이 많이 정화되어서 왔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같으면 절집으로 가지 않을 겁니다.

그 때는 무엇이라도 해서 이 난관을 넘어서야 어린 자식 불쌍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그 일념하나만 있었습니다

그 때는 여운이란 말만 알았지 사람에게 여운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젊은 날이였습니다.


지금의 여운은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최선으로 키워 주었다고 생각한 자식들에게도 지금의 식견이 있었다면 더 잘 키워 주었을텐데라  도히려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내 자식인데 귀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년으로 들어선 지금은 더 귀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오랜 세월을 보고 살았던 모임을 같이 하는 친구들 중에는 시어머니가 되고, 장모가 되고, 손주들의 할머니가 되어도,

작은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덕을 본다고 해도  손가락 끝의 밥풀만도 못한 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 이해하고 덮어지고 만나면 반갑고 그렇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런 작은 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가지고 살아온 그 친구도 나름 친구들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한정 된 삶의 시간이 남았을 것이고, 그 시간까지에도 내 몸 건강해서 사는 날은 또 아주 적을거라고 공통 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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