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청이 산촌이었어도 아버지 고향이었고, 도시에서 자랐던 아가씨가 산촌 시골로 시집을 갔었습니다.
우리 세대들은 일단 시댁으로 시집을 가서 한 1년정도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살림을 내어 주면 그 때서야 따로 나가 살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직장은 도시이고, 주말부부로 시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시집살이 1년 미만에 살림을 나왔었는데, 시집에서 살 때 어느 봄날 앵두가 빨갛게 익었을 때, 시어머님 오일장을 가시면서
왔다 갔다 하지말고 툇마루에 꼭 앉아서 다람쥐 봐라 하고 가셨답니다.
왔다 갔다 하지말라 하셨으니 책 한권을 들고 툇마루에 앉아 있으니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와서 앵두를 따 먹더니 가서는 친구를 데려 오고,
다음 올 때는 또 다람쥐가 더 오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앵두를 따 먹는 것이 재미가 나서 책 읽는 것도 뒷전으로 보고 있었다 합니다.
( 그 시절 산촌에서는, 남의 집 며느리가 책 들고 앉았는 모습은 남이 보면 흉이 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장에 다녀 오신 시어머님 뭐 했노?
말대꾸도 못하고, 툇마루에 꼭 앉아 있으라 해서 앉아 있었는데라 싶었답니다.
그렇게 여린 사람이 맏이로서 시집살이 모질게 살아 온 세월이었고, 자식 낳아 키우면서도 남편의 까다로운 식성등,
같이 차 타고 길 나서면 차 안에서도 이어지는 잔소리에 평생을 듣고 살아도 한번씩 속에서 치 받히는 덩어리가 있다고 합니다.
남편이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엔간만 하면 남들이 보면 푸른 초원이고, 복덩어리이고,
실제 그 사람의 아내 입장에서는 속 헤집고 골치 아프게 하는 골치덩이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언제 이 팔자 면하게 되겠노? 내가 죽어야 면하지... 하는 부부간도 있습니다.
준서할미가 올 해 들어서 철이 들었는지 준서외할아버지가 참 감사하게 생각 되어 집니다.
잘 하는 것이 많이 생각되고 그동안 불만인 것들은 남편이 나를 보는 것도 불만인 것이 참 많고도 많을텐데, 그 사람 입장에서는
참아 주고 살았을 것이다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자식들 키워서 결혼시키고, 부부 두 사람이 살아가면서는 측은지심이 들어서 산다고들 합니다.
측은지심이라는 것은 일종의 포기이고, 일종의 불쌍함이다 싶습니다.
준서할미는 측은 지심이 아닙니다.
남편에게 감사한 맘이 든다는 것이지요.
어제 친구와 이야기 중에서도 잔소리 하시는 것은 고쳐지지 않으니 참고 산다면 지금 잘 하시는 것 중에서 한 가지만 바꾸어져도
생활이 지옥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했더니 그 친구도 그렇다고, 내가 사력을 다 해 살아 왔는데 요즘 와서 동네 같은 연배 분들이
부럽다고들 한다 합니다.
그 친구는 아직도 여립니다. 싹싹하게 잘 해주면서 늘 잔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그 여린 심성을 알기에 준서할미는 만나면 배려를 할려고 합니다.
친구는 헤어질 때는 고맙다는 인사를 늘 합니다.
그러나 준서할미도 서로가 이해 하면서 본심으로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있음에 고마운 맘이 됩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준서할미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