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참 오래 된 친구

이쁜준서 2016. 12. 24. 17:55





요즈음은 옥상에 빨래를 오전 일찍 널어도, 정오무렵 널어도 하루에 다 마르지 않는다.

눅눅하니 장마철에 말린 빨래 같아서 실내에 건조대를 놓고, 다시 널거나 정오가 지나서 널어서 눅눅이 아니고 축축까지 가면

개켜 놓았다 다음날 옥상에서 하루 더 말린다.


오늘은 어제  한번 널었던 빨래를 다시 널 때 한번, 오늘 돌린 몇가지 되지 않는 빨래 널 때 한번, 걷으러 한 번 세번을 올라 갔었다.

춥다고 눈, 비가 올거라고 강한 표현의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오늘의 기온은,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 할 때 입학식하고 2주 정도 다닐 때 가제베 하얀 손수건 위에 명찰을 달아 가슴에 꽂아 주는 때,

언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운동장에서 적응 교육 시킨다고 싸늘한 바람은 불어서 이름하야 꽃샘추위에 고생 시키던 그 때 같다.

그 때야 춥다해도 한 겨울 추위와는 비교가 될수 없는 꽃샘추위일 뿐이어도 아이들이 병아리 같아서 더 춥고 고생스럽게 보여서 그랬었지만,

이틀 전에 비가 와서 옥상 전체 화분들은 습기가 있었다.

다년생 풀꽃들이 11월만 해도 파란 잎들이 견디어 내더니, 이젠 얼어서 폭삭 주저 앉아 있다.


작년에 아주 오랫만에 어찌 어찌 찾게 된 고등학교 동기중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카톡으로 떠 다니는 그림과 글들을 보내 주어도

사진은 보고 미소 짓기도 하지만, 시사성이 들어 있는 긴 글은 아예 안 본다.

전화를 두번이나 했나?  년말이라 전화라도 한번 해야 겠다 싶은차에 카톡이 왔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있는 날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바쁘겠지 싶어서 내일 전화를 해야 겠다 싶었는데, 카톡이 온 것을 보니

시간이 있는갑다 싶어서 전화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10여년간 얼굴도 않 보고 살았는데도 대화가 통했었다.

정말 따뜻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친구가.

너 이야기를 들어 보니 너가 어떻게 사는지를 알게 된다면서, 나는 너처럼 굳건하게 살지 못하고, 몇번을 많이 흔들리고

살았는데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살아야 겠다라 했다.

아가씨 적에 자취 할 때는 주말이면 친구 서너명이 우리 집으로 와서 밥 해 먹고 놀다가 영화보러 나가기도 했었는데,

그 때 우리들이 가면 밥을 참 정성스럽게 해서 주었다고 했다.

그 때의 기억은 없는데, 친구들이 오면서 밥 공기가 모자란다고 공기를 사 오기도 했었고, 오늘 그 친구는 작으마한 스텐밥통을

사 오기도 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멀리 전라도 순천에서 사는 친구가 즈그 집에 와서 2~3일 있다가 가라고 자기 남편이 전라도 구경 시켜 주고,

자기는 음식 솜씨가 있어서 맛나는 것을 해 주겠다고 작년부터 오라고 해서 준서할미가 가지 못 해서 만나지 못한 것이, 

올 해도 만나지 못 했는데, 저 대문 밖에 와서 이미 기다리고 있는 내년에는 준서할미가 서울로 가서 서울역에서라도 이 친구만이라도

보고 와야 겠다 싶다. 한 해 더 젊은 모습으로 만나야지 하는 맘이 된다.


오늘 전화 한 친구는 학교에서 선생님들까지 아신 유명한 친한 사이였는데도 얼굴 않 보고도 10년을 살았다.

우리들이 결혼 해서 첫아이 낳아 기를 때는 다른 친구들도, 양가의 엄니들께서도 너그는 나중에 사돈도 되겠다고들 덕담을 하셨는데도

그리 소식 전하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세상이 변해서 얼굴 한번 않 보고도 블로그 글로 서로간 왕래하면서 댓글, 답글을 달면서 10년에 가까이 친구가 되어 지내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다.그 분들 중에는 만나서 친구가 되어 만나면 서로 눈빛으로도 통하는 분들도 있다.

또 이 낯 선 도시에 결혼해 와 한 마을에 신혼을 몇년간 보냈던 사이라는 연유로 40여년을 보고 지내는 친구들도 있다.

무엇을 배우러 가서 인연이 되어 10여년을 친구로 지낸 사람들도 있다.


많은 친구들 중에서 고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오늘 전화 한 친구를 몇 시간만이라도 만나야 겠다.



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중앙에 얹혀 있는 작은 것을 보고

나름대로 코바늘 뜨기를 한 수세미이다.

작은 것이 처음에는 괜찮은데, 쓰다보면 작아서

조금 큰 사이즈가 필요해서 9개를 만들었다.


하마 이웃 친구 3개가 나갔고, 우리 아이들 오면 각자 2개씩 줄 것이고,

남은 실로 4개쯤 더 만들 것이고,


아이들 초등학생 일 때는 입학 때 기념으로 조끼를 뜨개질로 해 주고,

모자 달린 상의도 뜨개질로 해 주고,

여러가지를 뜨개질로 한 세월도 있었는데,

뜨개질에 손을 뗀지도 오래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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