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시아버님 사랑, 시어머님 사랑

이쁜준서 2009. 10. 16. 19:54

 

짚  신

짚으로 새끼를 가늘게 곱게 꼬아서 만드는 신발인데,

1945년 해방후까지도 농촌에서는 일상에서 이 신발을 신고 살았다.

 

 

지금은 저 세상을 가신 친정 어머니 신혼 때의 이야기이니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다.

외할아버님께서는 아이들 네명과 아내까지 여섯식구가 만주로 가 사시다 여의치 않으셨던지 다시 고국으로 나와

잠깐 쉬셨다 또 가족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셨던 분이시고, 친정 어머니는 성장기를 거의 일본에서 보내셨고,

결혼도 일본에서 하시고 신혼 때 해방이 되어 한국 시골중에서도 시골인 시갓댁으로 나오셨던 분이시다.

 

아버지 형제 세분이 일본에 계시다, 혼자 와 계셨던 큰 형님 (준서할미에게는 백부님) 은 그냥 일본에 계시고,

두형제분은 해방 후 곧 고국으로 같이 돌아 오셨다 한다.

그 당시에도 전차가 다니고, 전깃불을 켜고 살았던 동경에서 지내셨던 엄마에게는 다 낯 설었던 환경이었다.

밭에 따라 나가서도 일을 모르니 일도 할 줄 모르고, 농기구를 집에 가 갖고 오라해도 농기구도 모르고, 또 한국말을 사용하고

살았지만, 낯선 사람들의 말을 바로 바로 훤히 알아 듣지도 못하셨다 했다.

우리가 타인의 말을 알아 듣는 것은 반이상은 이미 짐작되는 것이라 바로 쉽게 이해하고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일본에서 온 셋째 새며늘아기가 곱고 이뻐서 특별하게 새끼를 아주 가늘게 꼬아서 곱게 짚신을 삼아 주셨는데,

처음으로 신어 보는 짚신이 발뒷꿈치를 갉아 먹는 듯이 아퍼서 뒷굼을 밟고 신고 다니다 축담 댓돌에 벗어 놓으면,

시아버님께서 다시 펴서 두셨고,

바로 신으면 물집이 생긴 뒷굼치는 아퍼서 도저히 견디지 못해 다시 뒷굼을 밟고 신고 벗어 놓고...

세번을 펴 주시더니, 어디 어른이 해 주시는 것을 세번씩이나 그러느냐고 참을 줄도 알아야지라고 호통을 치셨다 했다.

시아버님께서 사랑으로 해 주시는 것은 알았지만, 참고 바로 신고 다니기엔 너무 아팠다

전후 사정을 살펴서 배려 해 주시는 사랑은 아니였다.

 

그렇게 일본에서 성장하셨기에, 처녀적에도 자전차를 타고  다니셨다 했다.

한복을 만드는 것 등은 배우지 않으셨고, 결혼을 해서 한국 시골 중에 시골 시댁으로 나오셨던 것이다.

와서 그 해에 첫 추석이 돌아 왔고, 그 때의 한복 두루마기는 빨래를 하게 되면 반쯤 뜯어서 다시 꿰메는 것이여서

시어머니께서는,언제나 생나무꺾기라고 일본에서 나온 셋째 며늘을 아껴 주셨기에, 큰 며느리보고 두루막 바느질을 해 주라 하셨다 했다.

남편은 진작에 일본에 갔고, 혼자서 시집살이를 하셨던 우리 백모님 이제 자기 댁이 생겼는데, 해 입히겠지요라 하니,

병환중이시라 작대기를 짚으시고 건너 오셔서 이렇게 이렇게 하시면서 내 하는 거 보고 다음에는 너가 해라하시면서

두루막 바느질을 다 해 주셨다 했다.

그리고 명절날 친척들이 일본에서 온 새댁이 두루막 바느질을 과연 했을까?가 궁금한데, 멀쩡한 두루막을 입고 있으니,

새댁 본인이 했을까 싶어서 쑥덕쑥덕들 하게 되고,

우리 할머니께서는 누가 했겠노 지가 했겠지라고 며늘의 낯을 세워 주셨다 했다.

그 당시 우리 할머님 별호는 목소리가 커서 빈양철이라고 불리웠었고, 큰며느리에게는 호랑이 시어머님이셨다는데도

일본에서 자라 아무것도 모르고 한국 시골로 왔다고, 배워 갈 때까지 그렇게 깊은 배려심으로 일상사를 가르쳐 주시고,

기계로 뺀 흰 밀가루국수가 귀하던 시절이었는데, 건너 가면 큰며느리가 없으면 후닥닥 국수를 삶아 먹고 가라기도 하셨다 했다.

 

시아버님의 사랑은 같은 여자인 시어머님의 사랑과는 달랐던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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