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바소쿠리

이쁜준서 2022. 2. 12. 07:55

 

 

일본에서 수년간 자라서 그곳에서 결혼하시고, 해방이 되자 한국 산골 시댁으로 오신 엄니께서는

게다를 신고 오셨고, 할아버지께서는 새아기라고 손수 짚신을  최대한 곱게 만드셔서 게다를 치우고 댓돌 위에 얹어 놓으셨고, 방에서 나오니 그 짚신을 신으라 하셨고,

게다를 신다가  뒷굼치는 너무도 아퍼서 뒷굼치를 밟고 신고 다니다 신발을 벗어 놓으면 

어느 날 또 새 짚신을 댓돌 위에 얹어 놓으셨고, 그래서 더 참을려고 해도 다시 뒷굼치 밟아서 신으셨고,

세번의 짚신도 그렇게 했더니 어디 시아버지가 만들어 준 신발을 아파도 참아야 하지 하시면서

꾸지람을 듣고 다른 식구들처럼, 온 동네 사람들처럼 짚신이 일상용이 되었다 하셨다.

우리 어머니께서 나를 20세에 낳으셨으니 일본에서 나올 때는 19세 이셨다.

 

반면 우리 할머님께서는, 

해방이 되자 일본에 가 있던 아들 셋이 맏 아들은 결혼을 하고 일본에 갔고, 맏며느리는

같이 살고 있었고,

둘째 며느리는 부산에서 일자리를 구해 따로 살았고,

셋째 며느리는 그 산골에서 토지도 얼마 되지 않아도  농사를 지으면서

작은 집으로 살림을 내어 주셨고,

 

그 시대는 시집을 가려면 처녀들은 여자 한복 일습을,

남자 한복, 주 적삼, 조끼, 두루막, 아주 솜씨가 좋은 처녀는 도포까지 짓는 것을 배워서 시집을 왔는데,

일본 동경에서 자랐셨는데 그 당시 일본 아가씨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전차도 다녔다 한다.

해방이 되자 나오셨으니 이내 추석이 돌아 왔다.

할머니께서 니 동서는 모를 것이고 이번만 두루막 해서 주라 하시니,

이제 댁이 있는데 동서보고 하라고 주세요라고  냉정하게 거절을 했고,

어느 날 큰 집에 갔더니 보따리를 주시면서 이거 두루막 동서가 바느질 하라 하더라고.

어느 날 별호가 동네에서 ' 빈양철' 이라고  맏며느리에게 엄한 시어머님이셨던 우리 할머니가

그 당시에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데  신혼 집으로 건너 오셔서  바느질을 해 주시더라 했다.

아무한테도 내가 했다 하지말라고 입 단속까지 하시면서.

 

추석이 되고 온 동에서  일본댁이 과연 두루막을 바느질 해서 입고 나오나? 였는데,

우리 아버지는 두루막을 입고 큰집으로 오셨고, 우리 할머니께 누가 바느질을 했을까요?

동네 아낙들이 물으니, 아무도 해 주지 않았다.

지가 혼자서 했지라 하시면서,

늘 생솔가지 같은 사람이라고 우리 엄니를 예뻐 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더라고.

 

바소쿠리,

지게에 자잘한 것을 담아 나를 때는 싸리로 만든 바소쿠리를 얹어서 지게질을 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갈 때는 바소쿠리를 얹지 않았고, 솔갈비를 하러 갈 때는 바소쿠리를 얹어 갔다.

완전한 원형이면 지게에 얹어서 무엇을 얹기  어려우니 엉거주첨하게 앉은 듯  한 모양새 였다.

 

밭에 일하러 가는데 큰동서를 따라 갔는데, 집에가서 삼태기를 가져 오라는데,

처음 듣는 말이라 쳐다 보아도 별 다른 설명도 없이 집에 가도 할머니도 계시지 않아

다시 밭으로 오시고  농사 도구들을 몰라서도 한참을 헤맸다고 하셨다.

 

삼태기

삼태기는 흙이나 거름 · 곡식 · 쓰레기 따위를 담아 나르는 그릇이다. 싸리 · 대오리 · 칡 줄기 · 짚 등으로 엮어서 만든다. 대개 앞쪽은 밋밋하게 벌어지고, 옆에서 뒤쪽으로 갈수록 우긋하게 높아져 담고 들기에 편하다.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재료에 따라 구분하지 않으나, 짚으로 만든 것을 '삼태기', 싸리나 천 줄기로 만든 것을 '어렝이'라 구별해 부르는 지방도 있다.

 

내가 4학년 4월 신학기에 시골로 갔을 때,

들에 쇠죽 솥에 넣으려고 동네 아이들과 풀을 캐러 나갈 때 가지고 갔던 것이  싸리 삼태기 였고,

호미로 캤으니 흙이 많았고, 돌아 오면서 봇도랑에 삼태기를 넣어 일렁거려서 흙을 씻었다.

어찌 이렇게 편리한 것도 있나 싶었다.

 

곡식을 담아 나를 때 쓰는 것은 짚으로 곡식이 빠지지 않게 촘촘하게 만들어 져 있었다.

삼태기에 담아서 가마니등에 옮겨 부었고,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를 담아 나르는 것은 역시나 짚으로 엮은 것이였다.

싸리로 촘촘하게 만들 것은 퇴비등을 텃밭에 낼 때 사용 했다.

 

지게는 어린이 시절 부산에서 기차역 광장에 지게를 놓고, 짐을 옮기려고 있는 모습,

길에서도 지게에 짐을 잔뜩 지고 가는 것등을 보아서 지게는 익숙했다.

시골에 오니  지게에 바소쿠리를 얹어 자잘한 것을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신기하기도 했고, 그 모양새가 우선 넉넉해서 보기도 좋았다.

지게에 바소쿠리를 얹은 것을 바지게라 했다던가?

 

넉넉함

바소쿠리도, 삼태기도 굳이 규격을 맞추어 정형화 된 것이 아니어서 모양새가 자유로 았다.

삼태기는 앞쪽은 땅평면과 닿고 뒤로 갈 수록 높아지니 호미로 끌어 넣으면 담기도 수월하고,

그 빗자른 듯한 모양새가 좋았다.

넉넉한 듯해서

 

지금 이 세상은 정형화된 모양보다 비 정형화 어딘지 비대칭인 것을 선호 한다.

여자들 원피스 긴치마의 정장이라도, 치마 단이 한쪽으로 쳐진다.

어쩌면 자유로운 듯해도 또 일 하는 현장에서는 자유로운 것보다 규격적이여야 하고,

하고, 자유롭지 못해서 인지도 모른다.

 

내 사고는 삼태기와 바소쿠리이다.

'샘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각각의 일을 하면서  (0) 2022.02.21
편한 세상은 맞은데  (0) 2022.02.20
아쉬운대로 살기  (0) 2022.02.10
뭐 대단한 것 같은 것들도  (0) 2022.02.06
참기름 한병  (0) 2022.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