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번지고 3년째 접어든 신년 초이다.
재작년은 처음에는 대구를 중심해서 대구란 도시가 폭망하는 수준으로 코로나가 기승이더니,
작년에는 야금 야금 아기가 가진 펑 과자 반달 만들어 준다 하다가 초생달 비스름하게 만들어 져서
다시 초생달 만들어 준다고 아기가 그 모양이 아니다 할 때마다 야금 야금 먹다가
아기의 기대감은 없어지고 조금 남은 펑과자는 아기가 우니 성아가 얼른 입에 넣어 버리듯이
내년이면?
그 내년 봄에는 여름만 지나면?
가을도 믿읍지 않아서 겨울이 되면?
그렇게 어른들의 펑과자는 한해를 말아 먹고,
이제 새해가 되었는데도,
가을 쯤이면 코로나가 좀 숙질 것이고?!
그 때 가벼운 여행으로 친구도 만나고,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도 만나러 가고?
정답이 없는 숙제만 날로 날로 기대감을 뭉갠다.
코로나 전에는 집에 입을 옷이 없는 것도 아닌데도,
새 기분으로 바지도 사고, 상의 외출복도 사고
발 편하다고 제법한 거금을 준 구두가 있는데도,
발이 편해 보인다며 신발도 사게 되고,
신발도, 옷도 가벼운 여행시에 입을 것들이 도통 필요가 없어졌고,
차사, 기제사 법도가 달라서,
내가 아는 지인이 친정에서는 딸만 있고,
시댁에서는 맏이이고,
시동생들은 차사이건 기제사이건 모시러 오지 않고,
자기는 시부모님 기제사와 차사를 모시고 있으니
친정 부모님 차사도 같이 모신다면서,
차려진 제사 상 앞에 양가의 부모님 영정 사진을 놓고, 지냈다는 사진을 보내 오니,
차사에는 영정 사진을 놓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카톡방)
예전 우리들이 새댁일 때는 혹시 친정에 제사를 모실 남자 후손이 없어서
손님이 다 떠나고 정지를 밞고 들어가는 작은 쪽방에서 간단하게 상을 채리고
촛불 켜고 제사를 모시기도 했었다.
뭐 대단한 것들이라고 갓 시집온 새댁 며느리에게
무안을 주어 가면서 가르쳤던 것들이 지금 이 세상에서는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냥 법도 보다 친정 부모님 제사 자기가 모시지 않으면 형제중 아무도 모시지 못하니
내 생전 시부모님 차사 모실 때 같은 상에라도 모시고,
기제사는 시부모님 두분 같이 모시고,
친정부모님 두분 같이 모시고,
명절 차사 두번,
그래서 네번 모신다고 했다.
잘 했다고 상도 참 정성으로 차렸다고 수고 했다 해 주었다.
사람은 자기 건강이 좋지 않다고 포기를 하지 않아야 하고,
하지도 않고 포기부터 하지 않아야 하고,
사람간의 소통도 해야 하고,
노년을 지나 노인으로 가는 때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TV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를 보는데,
자유인이란 프로그램을 올 겨울 들어서 재방송 채널이 잡히면 본다.
첫째는 다 포기하고 자연 속에서 사시는 그분들의 웃음 띤 행복한 얼굴이 보기 좋고,
둘째는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방송국에서 간 사람에게 자연인이 스폰지처럼이 되듯,
또는 방송국에서 간 사람이 자연인에게 스폰지가 되듯 한 것이 보기 좋아서이다.
예전에는 우리 말에 (너에게) 물들었다라 하면서 환하게 웃으시던 순박한 사람들이 있었다.
물들다는 말의 긍정적인 측면이 참 좋다.
오늘은 섬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인물도 좋고, 자세도 반듯하고,
남편이 몸을 다쳐서 10년정도 나 혼자서 일 해서 아들 대학교까지 시켰다 하면서
고생스러워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은 오는 것이라 했다.
어느 새 남편도 약간 절어도 배를 운전해서 바다로 나가서 용돈벌이는 되는 듯 했고,
두 사람다 행복 하다고 했다.
내가 참고 살았더니 이런 행복한 날이 있네요라고.
' 진심이' 하도 무너져서,
누가 면요리를 면치기 하는데 깜짝 놀랄 정도가 되면 면요리에 진심이네요.
먹방에서 상상 못할 정도로 먹어내도 먹는데 진심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