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할 이야기가 점점 줄어드는 세상

이쁜준서 2020. 2. 25. 07:29


참 이야기가 없는 심심하게 사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몇십년 전까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생활이 이야기가 되었었다.

음력 정월달에 장을 담으려면 우선 11월쯤 메주를 쑤어야 했고, 말려야 했고, 띠워야 했고,

소금물 풀어서 장을 담아야 했으니 그 모든 과정들이 이야기가 되었다.

음력 정월에 장을 담고, 양력으로 4월쯤 되면 장 독에서 장 익는 냄새가 솔솔 나고,

간장이 노르스름 해지면 맛난 향도 나고 보기도  참 좋다.

그 간장을 떠서 달래 넣고 양념장 만들면 상추쌈에 또 밥 비벼 먹기도 했었다.

달래를 캐러 가서의 행동도 가져 와서의 엄니께 어깨 으쓱하면서 드리는 것도 모두 이야기가 되었다.

그 담날 학교로 가면서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하면 나도 어제 달래 캤다는 아이도 있고, 우리 동네 아이들과는

같이 캐러 나섰으니 까르르 까르를 할 거리가 아니여도 그렇게 웃었다.

장 항아리에서 메주와 섞여 있으면서 노르스름한 덜 익은 간장은 옅은 맛이라도 때로는 옅은 맛이

입에 당기기도 하는 것이 봄날인 것이다.


오늘은 바람도 없으니 완연한 봄 날이다.

창문을 열어 놓아도 츕지 않고, 옥상에서 전지 했던 가지 모으고, 낙엽들 포대기에 빗자루 질 해서 넣고,

일 하다 모자를 벗고, 일하다 조끼를 벗고 그래도 등에 땀이 날려 했다.

인심 후한 이웃 친척 할머니가 울고  있던 나를 달래면 내 맘이 무장해제 되어서 웃게 되는 것 같은

햇빛이었다.


아직은 옥상 식구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지  않는다.

명자꽃몽오리도 약간 봉긋해서 색도 드러나는 것도 있고, 꼭꼭  빗장 지르듯 입 꼭 다문 것도 있고,

앵초 화분처럼 다 죽은 듯 흙만 보이는 것도 있고, 차이브는 1Cm정도 새싹을 조심스럽게 올렸고,

정구지( 부추)는 가느다랗고 붉은색을 띤 새싹이라기보다는 새싹이 될 것이구나라 보인다.

일주일 전 마른 잎과 낙엽이 날아 덮힌 것과 논냉이 꽃까지 핀 것을 뽑아내고 정리를 해 주었던 것이다.


라이락은 꽃몽오리가 될 것이 겨울에 꼭꼭 싸매고 있었는데 전혀 미동도 없다.

차라리 수국이 잎들은 말라서 그 가지에 붙어 있어도 새싹이 될 눈이 제법 동그랗게 미소 짓고 있다.

옥상 식구들은 춥다고, 바람이 많이 분다고 투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핑계도 많고, 불만도 많고, 투덜거리기까지 하는 것일뿐이다.

지금 난리 난 세상은 겁이 나서 투덜거리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해 온 이력들이 높은 곳에서 보시기에 마땅하지 않으셨을 것 같아서 무서운 것이다.


지금 세상은 거의가 완성본이다.

내가 이야기 하는 것보다 드라마나 영화가 더 재미 있으니,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고 끼어 앉듯이

하고 살았으니 내 상상력으로 구상하는 것이 없어서 조금만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심심해 지는 것이다.

도시에서 그렇다고 딱이 소일거리가 있지도 않아서.




피어 난지 오래 되지 않아서

수술들이 고개 들려 하는 것이고,

왼쪽 옆으로 저렇게 꽃술이 선다.



당조팝꽃

2015년 화훼단지에 갔을 때,

산의 마사토에 심어져 있는 것을  사 왔다.

사온 당년의 꽃이 핀 것이 이렇게 크다.

녹색 잎 위에 하얀 꽃은 참 우아 하다.




조팝나무 흰색꽃들은 실내로 들이지 못한다.

그 작은 홑꽃들이 모여서 작은 한송이를 만들고,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꽃가지를 만들고,

하는 것에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것이라 햇빛 아래서 바람도 있어야 에너지를 생산 해 낼 수 있어

감히 실내에 들일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큰 터빈은 작은 터빈보다 에너지가 몇배가 들지 싶고, 또 에너지가 몇배가 더 나오지 싶은데,

생명이 있는 식물을 큰 꽃 보다는 작은 꽃이 에너지를 더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샘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동 쇠고기 국  (0) 2020.03.05
2020 설화 피다  (0) 2020.03.02
숨구멍은 있다.   (0) 2020.02.22
월동  (0) 2020.02.21
물 만난 고기 같은 날  (0) 2020.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