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꽃기린
경기도 수도권에 살고 있는 동서가 왔습니다.
준서에미 생후 8개월 차에 큰시동생이 결혼을 했고, 새댁 동서는 촉감 좋고, 무늬가 고운 홈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8개월차 아기는 그 치마 앞에서 치마를 만지고 놀기도 했었지요.
외갓댁, 종시숙댁들에 인사를 드리러 데리고 다니는데 4살 차이가 나는 동서가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여서
같이 길을 걸어 가면서도 웃으면서 쳐다 보기도 했던,
결혼 해 우리 가족이 된 동서가 이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준서 할미의 손아래로 첫번째 동서와는 그렇게 예쁘게 봄으로 시작 되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예쁜 것이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사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이쁘게 보아 주는 것이
다른 사람이 이쁘게 보아 주는데, 내가 못 미친다 싶으면 그 이쁘게 보아 줌에 맞출려고 노력 하게 되는 것이지요.
준서할미는 비위가 약해서 어린시절 시골에 살 때는, 그 시절 개인 수저를 정해 놓고 쓰던 시절이 아니였지요.
다른 사람이 먹던 수저를 쓰기 싫어서 놋 숟가락이었는데 한 쪽이 닳아진 숟가락을 예쁘다는 핑계를 대고 제 숟가락으로 사용 했었지요.
쌀은 찾아야 보일 정도의 보리밥을 먹고, 할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집의 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쌀이 그래도 제법 섞인 밥을 떠 드렸는데, 그 밥이 상에서 나와도, 생선 토막도 귀하던 시절에도 상에서 나온 생선 토막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비위가 약 했었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과도 밥을 비벼서 한 그릇에 숟가락을 넣으면서, 밥을 먹지 못하는데,
그 동서가 시집을 와 우리 가족이 되면서,
같이 주방에서 일을 하고, 상에 나물 반찬을 놓고는 나물 무친 양푼에 솥에서 바로 바로 주걱으로 떠 넣어서는
쓱쓱 비벼서는 아무 꺼리낌 없이 먹게 되었었지요.
큰 아이 준서에미 8살 때는 어찌 어찌 살아 가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시동생네 4식구가 우리 집으로 와서
1년여를 함께 살았습니다.
큰 아이 초등학교 입학 하고 봄 소풍에, 7살아이, 4살 아기 2명과 동서과 준서할미 5명이 소풍을 따라 갔었고,
큰 아이 초등학교 1학년 가을 운동회 때는 시어머님, 시이모님 역시나 동서와 아기들 3명, 도합 8명이 따라 갔었고,
동네 시어머님 친구분들께서도 낳아서 축하 해 주셨고, 임신 때부터 낳아, 자란 것을 보아 오셨던 아기가 하마 초등학생이 되어서
운동회를 한다고 몇 분이 통닭 한마리 튀겨서 들고 오셔서 점심 같이 하시고 운동회 구경 하시기도 하셨으니
초등학생 1학년 한명에 운동회 따라 간 사람이 참 많았었지요.
그 시절은 동네 초등학교 운동회는 도시에서도 자기 집에 직접 초등학생이 없었어도 온 마을의 운동회였었습니다.
김밥, 간식거리를 동네 슈퍼에 드리고 가면, 동네 어르신들이 슈퍼에 모여서 드셨기에,
우리 식구 먹고, 소풍이나, 운동회 때엔 김밥을 30줄씩 말아야 하기도 했었습니다.
시숙과 제수씨가 내외하던 시절이어서, 안방에 상을 들이고, 동서네 방에서 어린 아이 4명과 동서와 준서할미는 따로
밥을 먹었고, 동서는 우리 아이들 먹다 남기는 밥 그릇까지 먹었고, 준서할미는 우리아이들 먹던 밥도 못 먹었습니다.
막내 아들이,
첫 아기를 낳았을 때 산후 구완 해 주러 가셨던 시어머님께서는, 일 하러 나가는 막내 며느리 대신 아기들을 키워 주시고, 살림을 하시다,
20여년이 지나서, 혼자 독립해서 살게 되셨습니다.
그닥 맘이 편치 않았던 준서할미와 수도권의 동서는 찾아 뵙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님댁에 동서와 함께 첫 방문을 할려고, 수도권에 사는 동서가 왔었고,
큰 시누이를 만나서 같이 가는데, 큰시누이는 우리 점심을 사 주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시어머님 댁에서는 시이모님도 와 계셨고, 시어머님께서는 저녁밥을 해 주셨는데, 반찬도, 고루고루, 과일도 고루로루,
커피도 마시지 않으시는 분께서 커피도, 생강분말차도 준비 해 두셨고,
큰 시누이는 엄마는 며느리들이 오니 그렇게 좋으냐?고.
딸들이 사위들과 외손주들을 데리고 가도 그렇게 준비를 하셨지 싶은데,
며느리 들이 처음으로 당신 집에 오니 좋기야 하셨을 겁니다.
딸은 당신의 소생이니 정이사 더 하겠지만,
들어 온 가족인 며느리들은 손주들도 낳아서 길렀고, 늙어 가는 아들의 의지도 되는 사람이고,
모든 일의 대소사는 며느리들이고, 그 중심에는 맏며느리가 있어 처리가 잘 되면 화목한 가족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늘 불협화음이 내는 것이다 싶습니다.
동서나 저나 남편들과 결혼하면서 그 인연으로 만난 시어머님이고, 시누이인데,
한 세월 살고,
시어머님이 따로 살림을 내면서 시어머님 댁으로 찾아 가서 만나는 그 기분은 한 마디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친정 여동생을 만나는 것도 참으로 반가운데,
시댁의 가족인 시어머님과, 동서와 시누이와 만나는 것은 우리 가족이란 큰 테두리의 사람들이라 또 다른 정이 든
그런 관계이라서 서로 서로가 그 중한 느낌이 또 있습니다.
시동생이 외국을 자주 왕래하는 직업입니다.
어제 온 동서는 원두커피 몇 봉지를 가져 왔습니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마중도 나갔고, 배웅도 나갔었습니다.
배웅하는, 고속터미널 역사에서,
형님 커피는 제가 계속 대어 드릴께요라고.
늘 하던 것처럼 준서할미도 이런 저런 것을 챙겨 주고,
이번에는 간장, 된장은 시누이가 챙겨 주었습니다.
큰 시누이와는 3살차이, 동서와는 4살차이 그 밑으로 동서나 시누이, 시동생들은 다 띠동갑 이상의 나이차가 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큰 시누이가 언니야 우리 셋은 엄마가 세상 길 하직 해도 친구처럼 만나자라 했습니다.
즈그들과는( 동생들과) 엄마 세상 하직하고 나면 몇번 만나겠노? 라면서.
형제들간에도 나이가 비슷비슷해야 정이 더 납니다.
말이 통해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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