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부터 좀 자립적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 집어 주기도 했고 도와주기도 했다.
동서가 둘이 있는데 큰동서는 내가 결혼 하고 세 해 뒤에 시집을 왔는데 그때 유행하는
꽃무늬 홈드레스를 입고 있으면 정말로 이뻐서 사랑으로 보고 또 보게 되었고 둘째 동서는 15살 차이라
그냥 형제로서 이뻤지 사랑해 지는 것은 아니였다.
국화인데
구절초처럼핀다.
30여 년 전만 해도 참깨를 두 됫박 사지 넉넉하게 사지도 못하는데 큰동서에게 적게 준다고 주어도 반되도 더 되게 퍼주게 되니
어느 해는 장독간 항아리에 넣고
올해부터는 안 준다 했는데,
올 때면 간장, 된장 고추장을 가지고 가니 둘이서 담으러 올라가서는
나 자신도 모르게 내려가서 비닐봉지와 참깨 뜰 그릇 가지고 오라 하고는 또 손 크게 담아 주었다.
동서가 참깨가 옥상에 있는줄도 모르는데.
밑둥을 보면 대궁이가 외대인데
가지를 이렇게 이쁘게
늘려서 포기로 피는 중이다.
재작년 꽃집에서 작은 폿트
2개에 5.000원을 주고
산것이 이 색하나만 남았다.
꽃몽오리가 피어나니
아기새들이 합창을 준비 한듯 보인다.
멀리 있는 큰동서가 가고 창원에 있는 둘째네에 아기들 키워주고 살림해 주러 시어머님 가 계시니
자연 갈 때면 큰동서보다 양은 적지만 둘째네도 주기는 주었다.
꽃몽오리가 화분 한 가득이다
흰색과 미색의 중간색이고,
겹꽃이다.
우선 몇송이 피어 주어서
얼굴을 보여주네.
우리 아이들이 크니 동서들이 갈 때면 가지고 온 자기들 가방에 이런저런 것을 들고 내려가는데
우리 아이들도 동서들도 드는 것이
무거우면 안고 계단을 내려가니
또 내가 무거운 것을 들고 다녔다.
씨앗 뿌린 상추가 꽃처럼
색을 입고 이쁘다.
작년부터 몸이 션치 못하니
딸들이 지금까지는 엄마 걱정을 하지 않지는 않았겠지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요즘 치과 치료를 하니 먹는 것이 제한적이라 큰아이 준서 엄마가
전화를 걸어 옷 따뜻하게 입고, 산자락길도 당분간 가시지 말고, 단백질 음료 사 보낼까요라고.
아니다 산양유에 가루로 된 콜라겐에 검은콩,검은깨 뽂은가루도 있어 유산균음료수에 태워 먹고 파는 죽보다는 내가 더 맛나게 끓이고 아빠도 계시니 걱정마라고 했다.
계단이 있어 넘어지는 것도 걱정을 한다.
어제는 전기 히터와 비데를 샀으니
택배로 7일날 오후에 갈 것이라고 카톡이 왔다.
비데는 나는 찜찜해서 지금까지
설치 하지 않았는데,
아빠 겨울에 따뜻해야지요라고.
저는 엄마를 전혀 닮지 않은 줄 알았는데 주도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엄마를 그대로 닮아지더라고 했다.
엄마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겨보려고 한 적이 없어요.
이기려고 해도 안되고
그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그렇게 지냈는데,
자료를 많이 모아서
하는 일거리를 윗분이 주시면서
도와줄 사람들이 많으시잖아요라 하신다고.
엄마 닮아서 저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친척들이 큰 아이가 결혼 전 차사 때 오시면 아기 때부터 순했다고들 하셨다.
형제처럼지내는 친구가 시골 친정집으로
집 봐 주러 간 친구가 방금 전화가 왔다
결혼을 해 시집 온것이 앞 뒷집이었다.
친해진것은 10년이 지나서이고,
그 친구 큰아이 5학년말에 이사를 갔는데도 우리의 정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초석잠이 잘 되었다고 캐면 보내줄께.
아침식사는 했고, 들에 할일이 많다고,
오늘은 형님 안부 묻고 나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