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죽기 싫더라

이쁜준서 2019. 12. 19. 06:30


구순의 시어머니께서는 혼자 사십니다.

오래 살아서 미안한데 않죽으니 산다.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고 희망이 없는데 살고 싶지 않다 하셨다.

워낙 욕심 없으시고 점잖으신 분이라 정말 그러실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무슨 희망을 드릴 수도 없었다.

혼자 사셔도 경노당이 가까워서 경노당에 가셔서 다 같이 따뜻한 밥 해 드시고, 오후 4시쯤이면 집으로

오신다 하는데 젊은이들(70대) 편하게 놀아라고 비켜 준다 하셨다.

박스에 흙을 담아서 정구지(부추)를 키워서 가끔 경노당에 전을 해 가시고, 막내 아들네 정구지 김치도 담아 주신다 했다.


오늘 아침 친정 숙모님께서 전화를 하셨기에 뭔 일이 생겼나? 걱정스러웠고 받으니 음성이 들리지 않고,

세번째 전화에 통화가 되었다.

노인분들이 스마트폰을 새로 바꾸시면 한동안 전화기가 잘 되지 않으시던데.

이슬비가 오고 있었고, 인도는 공사 한다고 막아 놓았고, 잠시 차도로 내려가 공사 구간을 지나서 다시 인도로 올라 설려고,

차도로 발을 내 딛는데 그만 미끌어졌고, 얼굴은 다치지 말아야지 싶어서 땅을 짚은 손에 힘을 모았고,

2주가 지났고 혼자서 병원치료 받으러 다녔고, 오늘 몇십년을 아침이면 갔던 수영을 다시 갔는데,

오른 손 숟가락 쥐는 손가락이 뻣뻣한게 덜 풀렸고, 뼈는 다치지 않았다 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셨다.

여든 여섯이시지 싶은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병원 다녀 와서 혼자서 아프고 있는데, 도리혀 죽고 싶지 않다

더 살고 싶다란 생각이 들더라 하셨다.

수십년 같이 한 등산팀과 매주 북한산 밑에서 모이고, 산 공기와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서 가신다 했다.

산악회 총무를 맡아 보신지도 몇십년이 되셨고, 컴퓨터로 다른 것은 못해도 년말이면 정산한 것을

프린트로 뽑아서 회원들에게 나눈다 하셨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우리 시어머님께서도 죽지 않으니 산다고 하셨던 말씀은 그런 기분이 든다이시지

진짜의 맘은 아니시지 싶었다.


남편이 병원에서 치료 효과가 없다고 치료 중단이라 하고 석달 정도 집에서 간호하다가 집에서 돌아 가셨는,

그 언니가 하는 말이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 했다.

꼭 더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고, 언니의 경우는 죽는 것이 겁나서이라 했다.


작년 봄에 경주에서 핑크뮬리가 곱게 피었을 때 친구 내외와 만났었다.

몇십년을 골퍼를 하셨던 분이시라 동안의 얼굴보다 뒷 모습이 더 젊어 보이는 탄탄한 분이신데,

올 해 병 진단을 받았고, 지금은 대문까지 혼자서 걷지도 못하신다고,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저 멍~ 하기만 하다 했다.

그 쇳덩이 같던 다리가 살이 다 빠졌다고, 애 타 했다.


노년이 지나가고 어느 듯 노인의 길에 선 자기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시어머님도, 숙모님도, 혼자 사시지만,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신다.

정구지 박스에 키워서 노인정에 전을 해 가고, 막내 아들네 오면 김치 담아서 주고,

아직도 대접만 받으려 하시는 것이 아닌 삶을 살고 계시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원동력이 된다 싶다.

컴퓨터가 07시 12분이라 하는데도 밖은 여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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