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짚,
내 어린 시절 볏짚은 흔하기는 해도 허투로 하지 않았던 귀한 것이기도 했다.
벼가 노랗게 익다가 누렇게 색이 무거워지면서 논에 물을 빼고 벼를 베기 시작한다.
한아름되게 뭇단으로 묶으려면, 양손에 벼 이삭을 잡고 벼이삭끼리 맞대어 비틀어서 벼를 묶었다.
논둑에 세워 놓고 수분을 말려서, 탈곡을 하기 위해서는 논에서 다시 작은 단으로 묶어서 소 등에 질메를 지워서
한바리씩 무겁게 집으로 들였다.
벼 타작이 끝나면 매상을 대고 남은 나락은 마당에 짚을 재료로 만든 큰 나락 저장고인 뒤지를 만들어서
넣었고, 물론 그 뒤지는 비나 눈이 와도 속으로 스며들지 않게 만들었다.
짚으로 만든 뒤지는 공기도 통하고 습도도 유지해 주어서 방아를 찧어오면 미질이 아주 좋았다.
짚단도 차곡 차곡 쌓아 올려서 마무리를 잘 해서 속까지 비가 새 들어 가지 않았다.
초가집들이였으니 겨울에 지붕을 얼마간 걷어내고 새 짚으로 엮어서 초가를 다시 덮고,
초가지붕을 다시 덮은 일은 고도의 기술이 있어야 해서 젊은 아재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동네 할아버님들께서 코 끝이 시린 겨울날 아침에 모여 들고, 초가 지붕을 걷어 내는 팀, 용마루등,
초가에 다시 덮을 짚을 엮는 팀, 초가에 올라가서 덮는 일을 하는 분, 용마루를 올리는 일을 감독하는
분은 고참중에 고참이신 분이셨다.
지붕을 새로 올리는 일은 대단한 것이여서 장날 반찬거리 사다 놓았고, 잔치집처럼 따슨 점심을 먹으러
동네 분들이 오셨다.
시끌법적....
겨울 짚을 작두로 자르고, 콩깍지, 고구마 줄기, 고운 쌀겨등을 보관했다가 쇠죽 솥에 같이 넣어서 끓여서
소에게 주었다.
쇠죽 솥에 넣은 것만이 아니고, 소 외양간에 깔아 주면 먹기도 하고,눕기도 했고, 한번씩 외양간 청소를 하고
새로 볏짚을 깔아 주고, 끌어낸 것을 쌓아두면 두엄더미가 되고, 겨울내내 발효가 되기도 하고,
음력 2월 영동이 지나면서 날씨를 봐 가면서 논에 거름으로 흩어 뿌려 주었다.
봄 되면 두엄더미가 크다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부화를 해서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나오기도 했고,
논농사는 소와 함께 시작이 되고 추수와 탈곡까지 함께 하고, 사람은 알곡을 먹고, 소는 짚을 먹었다.
짚은 한가함이기도 했다.
한가한 겨울철에 밤이면 우리 집 머슴아재 방으로 모여서 새끼를 꼬았다.
그러다 한번씩 밤중에 초가 지붕 속으로 후랫시를 비쳐서 참새를 잡아서 그 작은 참새를 가마 솥에 넣고,
밤참으로, 죽을 끓여서 먹기도 했고, 모여서 제 각각의 새끼를 꼬면서의 겨울 낭만이었다.
겨울 낮에는 자기들 집에서 밤에 모여서 꼬았던 새끼로 가마니도 치고, 덥석도 짜고, 솜씨 좋으신 할아버지들께서는
짚으로 날줄, 씨줄로 엮어서 둥근 봉태기를 짜기도 했다.
봉태기에는 곡식을 담아 놓기도 했고, 거의 뚜껑이 없었지만 뚜껑이 있게 만들기도 했다.
아궁이에 재를 끌어 내어 담는것을 싸리로도 만들수 있겠지만 재가 흘러 내려서 짚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짚이 한가함과 만나면 여러가지 예술품이 되기도 하고, 생활도구가 되기도 한 것이였다.
아직도 짚이 꼭 필요한 곳이 있다.
청국장을 발효할 때도, 메주를 만들어 거죽이 피득피득하게 마르면 짚으로 달아 메어서 말렸고,
적당 한 때가 되면 짚과 함께 띠웠다.
나는 미세먼지 때문에 메주를 집에서 만들 수 없는데도 작년에도, 올 해도 짚 한단을 얻어 놓았다.
농촌에서도 소 사료용으로 비닐로 말아 버리기에 미리 챙기지 않으면 짚이 없다고 했다.
생활이 바꾸어지면서 짚의 용도도 소 사료용이 될 뿐 짚으로 짠 가마니도 없고, 새끼줄이 필요하지도 않다.
이젠 짚이 추억이 되었다.
채소단을 예전은 짚으로 묶었는데, 요즈음은 짚이 귀하니 질긴종이 속에 연한 철사줄이 들어 있는 끈으로
묶는다.
어쩌다 요일 장에 짚으로 묶은 채소가 나오면 장거리로 비료 많이주고 쑥쑥 크게 한 것이 아니다 싶어서
보면 사게 되고 사 오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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