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곳에서 오늘 송년 모임을 가졌다.
돈을 보태는 사람, 사과를 가져 오는 사람, 귤을 가져 오는 사람, 케익을 사 오는 사람 여러 사람의
인정으로 운동을 조금 일찍 마치고 성대하게 했다.
올 해 노총각의 분위기가 나고 까불거리겠다 싶어서 더 노총각으로 보였던 남자 한 사람이 2학기 개강에 들어 왔다.
알고보니 40대고 일찍 결혼해서 아들이 군에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했고, 사교댄스반에도 등록을 하고
갔더니 어르신들(할아버지들) 께서 집구적 말아먹을 일 있나? 당장 가라고 복도로 쫓겨 나서,
음악이라도 좀 듣자고 출입문이라도 열어 달라 해도 막무가내이더라 했다.
평생교육하는 곳 두곳에 갔더니 등록조차 해 주지 않더라고 했다.
20여명의 우리 반에서는 괜찮다고 회장이 사교댄스반 회장님께 우리 회원이라고 말 해 주겠다 했다.
일주일에 두번 중 한번정도만 왔고, 한 학기가 지나고 가을에 들어 와서는 한달에 한번정도 밖에 오지 못했다.
그는 행사를 뛰는 회사의 직원이었고, 사교댄스, 스포츠댄스를 배우면서 그 리듬감을 몸이 익히게 하고 싶어서
직업적인 훈련의 하나로 왔던 것으로 보였다.
모친이 승용차로 30분정도 거리에 혼자 사시는데 매일 아침 가서 밥을 지어 드리고 같이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고 거짖말 같은 현실을 이야기 했다.
아버지가 어머니께도 잘 하셨고, 우리 삼남매에게도 잘 해 주셔서 아버지 하셨던대로 따라 하게 되더라 했다.
아내가 잔소리 하지 않느냐? 했더니,
저가 우리 집에도 잘 하기 때문에 잔소리 하지 않습니다라 했다.
여름에 수박을 한덩이 사 들고 왔을 때도 작은 깔 자리도 가져 왔고, 칼, 껍질등을 버리는 비닐봉지도,
준비해 와서 여자인 우리들의 손이 가지 않게 일 해 본 사람처럼 깔끔 했다.
총무가 제일 막내였는데, 총무보다 몇살 적어서 한달 두달 지나면서 우리들의 막내 동생처럼 되었다.
한달여만에 케익을 사들고, 집 나온지 3일째라면서, 낮시간에 공연은 처음인데, 누나들과 함께 저가 할 수 있는 것
해 드릴려고 왔다고 했다.
행사를 갔을 때 차림으로 왔는데, 그동안 살도 많이 빠졌고,옷 입은것, 머리 손질, 화장, 빨간 구두까지 그런 행사를 하는 것에
최적화된 노래솜씨 춤 솜씨가, 쥐었다 놓았다 하는 말 솜씨로 우리들 송년회 자리가 행사장이 되었다.
그 직업은 일단 자기가 좋아야 할 듯하고, 노래, 춤, 말솜씨까지 최적화 되어야 성과가 점점 올라갈 직업으로 보였다.
행사장을 뛰다보니 집 나온지 사흘이 되었을 것이고,
땀은 줄줄 흐르고, 내 아침부터(낮 12시즈음에) 이렇게 하지 않는데 하면서 어색해 했다.
그에게는 직업이었고,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발전도 있어 보였다.
참 어렵게 돈을 버는 사람이다 싶어서 그간의 인연으로 맘이 쨘 했다.
그렇지만 그는 성실하고 모친께도, 아내에게도, 아들에게도 잘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잘 하는
당당하게 최적화 된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