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화훼단지에는 국화로 그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국화들은 돈을 주고 사면 되는 것이라서, 이 국화를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나? 하는 정성은 생각 해 지지 않습니다.
볼 때뿐의 향기이고, 볼 때뿐의 이쁨이고, 사다 놓으면 보는 즐거움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상품으로 기른 국화도 키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진딧물약을 5번은 쳤을 것이고,
국화 잎과 꽃을 갉아 먹는 벌레약도 쳤을 것이고, 또 시들지 않게 물을 주면서 키워 내었을 겁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이 상품화 된 세상에서는 키워낸 것에 대한 정성은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웃 친구의 외손주 네 살 승훈이와 동생 한 살 승빈이가 먼 뉴질런드 큰아버지 댁으로 놀러를 갔습니다.
즈그 외할머니께 폰으로 아기들 사진과 동영상이 오고, 준서할미가 아기들을 좋아 했으니 만나면 보여 줍니다.
승훈이가 벌레를 흥미 있어 하면서도 무서워서 만지지는 못하더니, 온 식구가 친가로 가 있으면서 그 때가 9월이었으니
아빠랑 근처 물가로 가서 낚시하러 오가는 들길에서 벌레, 잠자리, 물에서는 물벌레들을 자주 접하면서 벌레와 개구리에 대한 무섬증이 없어지더니,
큰 아빠 집에 가서는 큰 말을 탄 사진이 온 것을 보면 구경하러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동물은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면서,또한 무서웠는데,
그 무섬증을 또 넘었나 봅니다.
1월에 첫 돐이 되는 아기는 실내 계단도 기어서 오르고, 정원의 잔듸 밭에서 기어서 다니는 동영상도 왔습니다.
여기서도 낯 익은 사람을 보면 웃어주고, 더 반가우면 얼굴 만져 주더니, 사진과 동영상 속의 한 살 빈이는 웃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와 형아와 함께 있는 곳이라 낯선 곳이 아닌 듯 합니다.
이 국화꽃은 부여 백제 유적지 관광길에 찍어 온 것입니다.
봄부터 제 자리에서 키운 것이 아니고, 중간에 심은 것이라도 뿌리 활착이 되어 잎이고, 꽃이고 생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화훼단지에서 파는 국화와는 다르게 생명감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이틀을 한 나절씩 어쩌다 보니 남편 없이 중학생 딸과 사는 집에 가서 비닐 에어캡을 유리창에 붙이고, 문풍지를
해 주었습니다.
늘 빠듯하게 사는 집인데, 액자도 두개 벽에 걸려 있었고, 줄기가 벽과 창문을 타고 있는 녹색 식물도 작은 창에 있었고,
중학생 딸 방에는 딸아이 유치원 졸업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고, 책상에는 컴퓨터가 있었고, 실내는 아기자기 했습니다.
엄마는 야간 현장 작업하고 와서, 준서할미가 오전 일찍 가서 정오무렵까지 일 하는 동안 일 하는 것도 모르고 잤는데,
일러 줄 말이 있어 저녁 때 갔더니, 그 고단한 몸으로, 딸아이 저녁밥으로 김밥을 해 줄 소가 도마에 올려진 것도 보았습니다.
아마도 딸아이가 김밥을 해 달라 했겠지 싶었습니다.
시인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가 그리 울었나 보다]라 노래 하셨지만,
어떤 사람이건 그 자식을 키우기 위해 그 엄마의 낳고 자식 키우는 정성이 쌓여 눈으로 보인다면, 이 세상은 산봉우리가
발 디딜 자리가 없지 싶은데- 저 딸아이 엄마도,자기 엄니에게는 귀한 자식이었을 것인데 싶어서 애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여 궁남지 에서
사람이면 누구나 낳아서 엄마 모유나 우유를 먹고 자랐고, 백일이라고 친척이나 지인들의 축하를 받고,
첫 돐이 되면 나름대로 돐 잔치를 하고, 참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겁니다.
그렇게 내 자식을 키웠고, 그렇게 지인들의 자식의 첫 돐을 우리는 축하를 했었습니다.
엄니는 평생을 자식을 정말로 먹이고 입히는 것에 정성으로 키우고, 그 자식이 성인이 되어,
사람 구실을 못 해도 그 엄니는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 자식 밥 한끼니를 해 주어도 정성을 다 합니다.
잡초 속에서 풀처럼 자라서 잎사귀도 마르고 벌레 먹고 있다가 가을이면 피는 보잘 것 없는 꽃송이 작은국화는 지나가는 길손에게
딱 한송이 꺾여도 야생의 국화는 향기가 더 진한데,
사람은 자라온 과정은 없어지고, 사람 구실 못하면, 사람으로서 대접은 커녕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혼자 벌어서 혼자 딸 자식 키우는 그 아이가 잘 자라서 주변에서 대접 받는 사람으로 자라고, 그 엄니에게 잘 하고 살기를 바라게 됩니다.
준서할미가 살아 온 지난 날에는 음력 10월이 되면 방문에 붙어 있던 한지를 떼어 내고 깨끗한 한지로 새로 발랐습니다.
문짝과 벽 사이에, 문과 문 사이에 한지로 문풍지를 발랐습니다.
물을 품어서 붙어 있던 한지를 떼어 내고 걸레로 문살을 깨끗하게 닦아 내고 하면 10월의 기온은 손이 시렸습니다.
요즈음은 스폰지를 잘라 종이를 떼어내면서 붙이기만 하면 되는 대신에, 겨울이 지나고 떨어지고 나면 문가에 자국이 참 흉하게 남습니다.
한옥이야 요즈음도 한지로 바르는 문이 있겠지만, 주거 환경이 변하면서 거의가 유리 재질의 창문이 되었고, 현관문과 중문은 종이를 바르지 않습니다.
유리 창문에 비닐에어캡으로 바르고, 문풍지는 투명 테잎으로 된것을 그냥 붙이면 됩니다.
굳이 그런 보온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이 쉽게 쉽게 변하면서, 사람의 가치가 떨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 엄니는 귀하게 낳고, 태산 같은 정성으로 키운 자식들입니다.
누구나 내 엄니 나를 어떤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셨는지도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어떤 환경에 처 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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