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5,000번째의 포스팅을 하면서.

이쁜준서 2015. 12. 6. 19:19

 

 

 

 

 

늘 해 오던 것이고, 그 일이 아이들이 되었던, 형제가 되었던, 친구가 되었던 나눔이 된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좋은 일이고, 할 수 있다고 해서 계속 해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젠 일이 겁이 나고, 체력이 달려서 쉬었다 하고 쉬었다 하는 그야말로 쉬엄쉬엄 하지만, 그렇다고 일의 총량이 줄어 드는 것은 아니다.

배추 4조각 내면 적당한 크기를 40포기를 할려니 북어, 표고버섯, 다시마, 파 흰대궁이를 넣고, 한 말들이 한 찜통 끓여야 하고,

통찹쌀 풀도 찹쌀 1Kg으로 한 말 3중바닥 찜통에 끓여야 하고, 각종 젓갈 준비, 각종 양념준비, 참 일도 많다.

마당에서 씻어서 3층까지 올리는 일과, 양념 개는 것은  힘이 들어서 준서외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게 되고,

 

김치를 담으면 나가는 것이 10포기쯤 된다.

내년에는 반으로 줄여서, 20포기만 하고, 나가는 것을 싹 끊으려 한다.

마당에서 이웃 친구와 서로의 집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배추 절인 것을 씼었다.

일은 손이 맞으면 능률적으로 되는 것이다.

 

큰 플라스틱 통 세개를 두고, 수도 물 수압 높게 해 두고 씻으면 그리 힘들다 싶은 생각 없이 끝이 난다.

친구는 씻자 마자 가라고 하고, 중국집에 사용하는 손잡이 달린 철망 소쿠리로 배추 잎 조각을 건져 내면서 해도

배추 잎 작은 조각들을 다 건질 수는 없는 것이고, 한 통 물을 쏟아 붓고 붓고 했던 것을 또 마당을 씻으면서 정리 하는 일도

해야 하고 마당까지 깔끔하게 정리 해 놓고 왔는데, 이렇게 김장을 많이 하는 것은 올 해가 끝이다 싶으니,

계단을 올라 오면서 채반 위의 절인 배추가 자꾸 보게 되었다.

 

말하자면, 준서할미가 변해질려 하는 것이다.

친정에서도 맏이이고, 시댁에서도 맏이이고, 늘 나누는 입장이 되었고, 늘 양보하는 자리였다.

이제, 나이에 맞게, 체력에 맞게 살아 가는 것을 바꾸려고 한다.

동서가 둘이 있는데, 바로 밑의 동서는 자기 체중만 해도 무거운 사람이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작은 동서는 짐이 무거우면,

손으로 드는 것이 아니고, 안고 다니고, 나이가 제일 많아도 항상 준서할미가 더 무거운 짐을 들었고, 아니면 혼자 짐을 들고 다녔다.

몇년 전까지도 준서할미가 아이들과 다녀도 무거운 짐을 들고 다녔는데, 이제 아이들이 별로 무겁지 않은 짐인데도,

준서할미 손에서 기여이 받아서 즈그는 양손에 들어도 작은 짐도 들지 못하게 한다.

 

젓갈을 내리면서 사돈 드릴려고, 육젓갈, 액젓갈, 새우젓갈은 일부러 한통 더 사 두었고,

새우젓갈이 늘 맘에 찜찜 했었는데, 올 해는 부산 대변항 멸치젓갈 담아 오는 곳에서 서해안 젓갈 상회에서 부탁을 해서 사 주셨다.

사돈께서는 시골에서 농사 지으신 것으로 경상도 말로 2말 콩으로 메주 쑤어서 장을 담으셨다면서 주시겠다 했다.

준서할미도 메주 쑤어서 장을 담아 먹는데, 딸아이가 시댁 된장이 특별하게 맛나다  했기에 얻어 올려 한다.

 

배추 마당에서 씻어 채반에 건져 놓았고,  현관 앞에는 뚜겅 있는 통에 양념 개어 놓았다.

내일 아침 간을 보고, 모자라면 새우젓갈을 더 넣고, 조절할려고, 새우젓갈을 1/3 양만 넣어 두었고,무채와 갓을 듬성 듬성 썰어서 넣으면 된다.

나가는 김치도 올 해가 끝인데, 올 해 김치는 더 맛나면 좋겠다.

 

준서 육아 일기는 비공개로 돌린 것이 많아서 공개 된 글은 숫자가 적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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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번째 포스팅을 변해 지는 준서할미 맘의 글을 올려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