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생율로,
쪄서,
군밤으로,
어찌 해 먹던지 맛이 있다.
준서할미가 제일 좋아 하는 것은 군밤이다.
겨울에 군밤 한봉지를 사 손에 쥐면 그 따뜻한 온기가 좋고, 겉 껍질과 손 부내가 타서 딱딱하면서도
또 노오란, 달콤한 군밤을 입안에 넣으면 고소하고 달콤한 맛에 반한다.
단 맛의 으뜸은 초코렛의 단맛과 알사탕의 진한 단 맛이 아니고, 군밤에서, 군고구마에서 나는 단 맛이다.
가을이나 겨울에 서울행 기차를 타면서 군밤 한봉지를 사서 열차 안에서 먹는 맛은 특별한 맛이다.
밤이 생기면(사거나, 얻거나, 주워 오면)
우선은 쪄서 아이들과 준서외할아버지를 까서 접시에 담아 주면,
까는 족족 먹는 그 맛은 달콤하고 고소하기도 하고,
그렇게 식구들이 밤을 먹어 온 것이 오래 되어서,
우리 아이들은 즈그들이 밤을 까서 먹으려면 서너개 먹다 그만 둔다.
밤을 쪄서 따끈할 때 까주는 밤 한알 통채로, 입 속으로 오분순케 들어가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아서이다.
밤이 많을 때는
구멍 난 고무장갑 검지 손가락을 잘라서 오른쪽 엄지에 끼고는 잘 든 과도로 밤을 깎는다.
밥 할 때, 햇쌀이면 흰쌀밥에 깎은 생율을 넣고 밥을 하고,
올 해처럼 묵은 쌀이 남아 있는 때는 찹쌀을 섞고, 팥이나, 붉은 울양대를 넣고, 깎은 밤을 넣고 밥을 한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밤이 들어가 밥이 단 맛이 돌고, 구수한 밥이 된다.
그러고도 밤이 넉넉하면,
밤 껍질에 칼집을 넣고는 식당에서 국수나 나물을 건지는 큰 망소쿠리에 담아 가스불에 직화로 덖으면서
군밤으로 만들어 먹는다.
실감 나는 말로, 연기가 장난이 아닌데, 그 연기 냄새에는 군밤 향이 있다.
십여년 전, 친구의 친구, 친정 동네인 합천 쪽으로 친정 집에서 밤을 주어러 오라고 하면 밤을 주으러 갔다.
밤 철이 지난 때여서 거의 벌레가 먹었어도, 밤알이 굵어 벌레 먹은 쪽을 도려 내어도,
토종 밤보다 굵었고, 아주 맛난 밤이엿다.
한번 주으러 가면 거의 한말 정도 주어 왔으니 손질해서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 모듬떡을 하기도 했었다.
그 지방 밤처럼 맛난 밤은 지금까지 없었다.
하동의 친구 사돈께서 보내셨다고 두 됫박 정도 주는 밤이 밥 할 때 넣으면 그래도 달고, 고소하기도 한데,
생율로 먹으면 별 맛이 없다.
올 해 남부의 긴 가뭄과 폭염에 과일들이 맛이 없긴하다.
그래도 그 중 맛이 있어 보이는 것으로 10개 쯤 깎아서, 산초 술과 함께 먹었다.
약술은 안주가 따로 필요 없고, 찬 물로 목을 가실 뿐인데, 밤이 있어 안주가 된 것이다.
준서할미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 약술은 참 많이 마셨다.
개복숭아로 담은 술은 참 먹기가 거역스럽다.
그래도 허리가 아프니 10년도 더 전에 100Kg 정도를 큰 항아리에 담아 병에 담아 두고 참 오래 오래 먹었다.
약술은 먹기가 거역스러우니, 그렇게 술을 많이 먹었어도, 술을 먹지 않는다.
아마도 술을 맛나게, 흥겨운 기분이 돌게 먹은 것이 아니어서 그렇지 싶다.
야관문 술은 개복숭아 술보다 더 먹기 거역스러워서 두고 두고 몇년을 숙성 시키는 중이다.
밤이야기로 시작한 것이 약술로 끝났다.
'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손질 - 깻잎지, 매실 씨알 (0) | 2013.10.17 |
---|---|
영지버섯, 비단풀, 산초 풋열매 (0) | 2013.10.15 |
제철이 아닌 감자 값 (0) | 2013.09.29 |
산초 열매술 (0) | 2013.09.28 |
깻잎 반찬 (0) | 2013.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