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전기 전자 기계로 생활 환경이 바꾸어진 것 중에는 60여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 시절에 방안에 물이 나오고, 방안에서 불이 있어 음식을 익히고, 방안에 요강 아닌 변소칸이 들어 있고,
방안에서 이바구 책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네모 난 상자가 있다고 한다면 아무도 믿지 못 했을 거다.
이바구에서 나오는 도깨비 굴의 이야기보다도 더 황량하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이야기일 터 였을거니까.
70년대엔 부(富)의 상징이 화장실이 실내에 있고, 침대 생활을 하는 것이였고,
시골에서 서울 가서 성공한 자식이 아니어도,
조카만 되어도 서울로 초청해서 숙박을 하면서 서울 구경을 시켜 드리던 시절이였고,
그 때의 서울 구경은 창경원 동물 구경과 궁궐 구경과 워커힐 호텔에서 식사 대접이라도
하면 그것은 최상의 대접이였던 시절이였다.
그 시절 시골 마을에서 관광차를 대절해서 서울 구경을 하면, 워커힐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관광코스에 들어 있기도 했다.
서울 잘 사는 조카 집에 와서, (실제 친정 작은아버지께서 윗대 어른인 숙부님들을 서울에 모시면서)
연세 드신 영감님께서, 화장실에 들어 가서 재래식 변소 사용 하듯이 양변기 위에 올라 앉으신것 까지는 하셨는데,
내려 오시지 못해서 할 수 없이 고래 고래 소리치시면서 조카를 부르시던 그런 시절도 있었고,
대접 한다고 침대에 잠자리를 해 드리면 울렁거려서 밤새 잠도 못잤다 시면서 어지럽다 하시기도 했던 시절이였다.
90년대에는 도시라 해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 할 수 밖에 없는 오래 된 자연 부락에서 나고 자랐어도,
또 조금 일찍, 침대 생활을 하다가 큰집이라고, 할머니 댁이라고 와서는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서 화장실에 못가겠다는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만 해도 방바닥에 이부자리 펴고 사는 생활이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침대생활을 시작 했을 뿐인데도, 큰집이나 할머니댁에서 침대가 아니여서 잠을 못 잤다고,
투덜 거리기도 했는데,
그만큼 우리네 생할에서 침대와 화장실은 밀접하고 환경 적응이 빨리 되는 것이다.
이젠 도시고, 시골이고, 거의 수세식 화장실이고, 정기간이 아니고, 실내에 주방이 된 생활 환경이다.
1990년대엔 준서할미 세대도 집을 새로 옮기고, 새로 건축하고,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 대 변동의 시절이였고,
그러다 보니 오래된 냉장고, TV, 가구등을 장만하면서, 침대도 들이고, 그렇게 생활 환경이 변해 졌다.
준서외할아버지는 침대에 자는 것이 좋다고 하고, 준서할미는 따뜻한 방바닥에 등이 따뜻한 것을 좋아 한다.
준서에미, 준서이모 혼수 이불에도 침대 셋트를 철마다 해 주고도, 따로 면 요이불과 원앙금침의 실크 요이부자리를 해 주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집에 퇴근 했다고, 널널하게 쉴 수 없고,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고, 온라인으로 공부도 해야해서
다른 방에 이부자리를 펴 놓고 일을 하다가 새우잠을 자기도 하고,
양쪽 어른들께서 오셔도 겨울에는 요이부자리가 필요하고,
아기가 태어 나면 침대에 같이 데리고 잘 수 없어, 또 요 이불이 필요해서,
필요 없는 듯한 목화솜, 실크솜 요이부자리를 11년 전 큰딸 시집 보내면서, 이번 작은 딸 시집 보내면서,
침대가 주 잠자리이지만 방바닥에서 요펴고 이불 덮고 자는 그런 잠자리도 필요 한 것이다.
상가에 가서 확 눈에 띄이게 화사한 것은,
전기기구 상회와 이부자리 상회이다.
이부자리는 그야말로 천층만층 구만층까지는 않되어도 고급, 최고급으로 갈 수록 돈도, 품질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준서에미 때는 실크이부자리, 목화솜이부자리까지 해 주었는데,
그 새 10년이 지나서, 준서이모는 실크 이불,요를 해 주지 않고,,극세사 침대셋트와 목화이불, 요를 해 주었다.
그래도 준서할미는 겨울이면 등 따뜻한 온돌 바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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