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문고리 한번 안으로 잠그지 않았던 시절

이쁜준서 2013. 7. 27. 04:17

 

 

우리 동네는 주택가입니다.

처음 동네가 형성 될 때에는 여러가구가 살고 있어도, 밤이면 대문을 꼭 밀기만 하면 닫기기에 닫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대문을 들어 오면서 닫기라도 하는 사람은 준서할미 뿐입니다.

그러니 이 폭염의 여름 밤 에어컨을 켜고 자다가 추워서 에어컨을 끄고, 창문이란 창문을 다 열어도,

현관문을 5시 이전에는 열어 놓고 잠 들 수 없습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15여년 전,

오래 된 동네 한옥에서는,

어느 집이라도 창호지 문  손가락으로 뚫으면 되는 그 창호지  한 장으로  안과 밖인 시절에는

일년 내내 안으로 문고리 하나 잠그지 않고, 준서에미 그 집에서 낳아 대학 입학한 해까지 살았어도

무탈하게 아웃들도 무탈하게 잘 살았습니다.

 

창호지 문 하나로 안과 밖이 되는 그 시절에는

사람들의 맘과 인정이 아름다웠던 시절입니다.

 

그 아름다운 시절을 추억하면서,

이제 새벽 4시가 넘었으니 현관문을 열어 보아야 겠습니다.

너무 덥고, 에어컨을 켜지 않고, 바람의 소통이 있으면 더 좋을 듯 해서입니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났다,

5시에 옥상으로 올라가 화분의 식물들에 물을 주고, 뽀지락, 뽀지락 계속 일을 했더니 쉬고 싶어 집니다.

뭔 일을 그렇게 자꾸 했냐구요?

해도해도 표도 나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카메라 렌즈가 한 마디 경고도 없이 금방까지도 찍었는데, 다시 사진을 찍을려니 나오지 않았습니다.

떨어뜨렸느냐? 지금까지 사용하면서 떨어뜨린 적이 있긴했어도, 최근은 없었는데,

예전 어른들 말씀 표현대로 골병이 들었었나? 했습니다.

 

거금 66500원을 주었는데, 준서아빠가 카메라가 고장 나기 전에 사 드린다고 했었는데,

고장 났다고 하면 더 빨리 사 줄건데, 손에 익은 것이라 그냥 거금을 주고 고쳤습니다.

우리들은 쉽게 뭣을 버리지 못하는 세대들입니다.

 

얼마나 들고 다녔던지 카레라 케이스도 너덜너덜해서 작년에 새로 살려고 했더니 매장에는 없다고,

전화번화 하나를 주면서 경기도 어디라고 전화를 해 보라 하기에 너덜너덜 거려도 사용했는데,

내 카메라 케이스는 아니라도 카메라가 쏘옥 들어 가기에 14,900원을 주고 하나 샀습니다.

 

세월을 살다보니 컴퓨터, 카메라가 없으면 답답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샘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모습의 이야기  (0) 2013.08.02
숙모 질녀 지간이 세월이 흘러.....  (0) 2013.08.01
옥수수 보관하기  (0) 2013.07.25
블로그 벗님들  (0) 2013.07.24
보름달을 보면은 그리운 이가 생각나....  (0) 201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