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문득 문득 가신 엄니 생각이 난다.

이쁜준서 2009. 6. 12. 23:11

우리 외할머님 딸셋의 둘째 딸인 우리 엄니를 -국도 따시고, 밥도 따시다 고 하셨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으니 그 말씀의 뜻을 몰랐다.

친정엄니께서는 음식 솜씨가 있으셔서, 요리집에라도 가 잡수시고 오시면, 그 음식을 만들 수 있으셨고,

음식의 깊은 맛을 내는 분이셨다.

 

하시는 음식 중에는 냉면과 만두가 일품이셨다.

큰 음식점에서 주방장으로 모셔 가고 싶다면서 그 때는 거금인 월 100만원을 주겠다는 제의도 받으셨던 일도 있으셨다.

엄니의 냉면에는 엄니가 담으신 특별한 김치의 국물이 냉면국물에 첨가 되었다.

육수는 닭고기를 삶은 것이나, 쇠고기를 삶은 것으로 사용하셨는데, 국자로 기름을 걷어 내고, 한지를 덮어 또 기름을 빨아 들이면

기름기 없는 맑은 육수가 된다.

그러면 엄니표 평양식 김치의 국물을 적당하게 타서 냉면국물을 만드셨다.

닭고기를 삶았을 때는 닭고기를 고명으로, 쇠고기를 삶으셨을 때는 쇠고기를 고명으로, 얹어 셨다.

배, 삶은 달걀, 오이채, 오이를 썰어 소금물에 절여 새콤달콤하게 무쳐서 다 함께 고명으로 얹으셨다.

요즘 냉면집에 가면 나오는 얇게 썬 무우로 담은 냉면김치도 곁들여 먹었다.

 

엄니가 담으시던 특별한 김치는 - 김장김치를 할 때도 그렇게 담으셨다.

배추는 보통의 김장김치보다 조금 덜 저리고, 배추 한층, 소금에 둘둘 굴린 통무우 한층, 그렇게 독에 담아 하룻밤을 재우고

팔팔 끓여서 식힌 소금물을 잘박하게 붓는다.

배추에 양념은 건고추를 불려서 사람 손으로 다지고, 마늘 생강, 청각을 다져서 배추 양념으로 약간 넣고 가제 천에 마늘, 생강을

꾹꾹 굵게 찧어 김치 독 중간에 넣으셨다.

그렇게 담는 것이 평양식김치라 했는데, 그 김치가 아주 맛이 있었다.

동치미와는 또 다른 맛의 시원함이 있는 김치였다.

그 때는 김치독을 땅에 묻던 시절이었다.

 

결혼 해 와 김장을 하면서 비슷하게 담아 보았어도, 그 맛이 나질 않아 하지 않았고, 엄니께 영글게 방법도 물은 적이 없었다.

친척 결혼식에 친정올캐도, 여동생도 다 같이 만났었는데, 그 김치를 담는 법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올캐는 결혼 해 와서 한번도 담으시지 않았다 하고, 여동생도 제 혼자 담은 적이 없다 했다.

만두는 엄니가 하신 맛은 아니지만, 준서할미도 하고 있고, 올캐도 하고 있어 그런대로 명맥은 이어가는데,

냉면, 빈대떡은  명맥이 끊어졌다.

엄니가 해 주시던 맛이 나질 않으니 냉면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음식 이야길 해서 그렇지, 음식과 상관 없이 문득 문득 엄니가 생각나고, 또 한편 아~하 멀리 가셨구나.... 싶다.

엄니가 가시고, 한 2년간은 눈물이 핑그르 나서 하늘 쳐다 보았는데, 이젠 눈물은 없고, 가슴이 애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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