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페인트칠 하기.....

이쁜준서 2009. 6. 12. 02:08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버거운 일을 할 때 스스로를 - 전전후 일꾼 이라 합니다.

 

예전 한옥에 살 때는 구들장을 깔았는 온돌방이, 새마을보일러란 말로 통했던, PVC호스를 방바닥에 깔고,

부엌 아궁이는 연탄 아궁이 둘레에 알미늄 관이 감겨 있고, 그 관에 물이 덥혀져 방으로 순환이 되는 그런 보일러로

온돌방의 데우는 구조와 방법이 바꾸어 지기도 했었고,

연탄아궁이 뚜겅이 물을 데워 옆에 통으로 순환되어 아침, 저녁으로 따뜻한 물을 사용하게 하는 수도 있었지요.

 

그러다 획기적으로 한옥 정지간(부엌)이  바꾸어지게 되었던 것은 준서에미 초등 4학년 때 푹 꺼졌던 정지간을 방 높이로 메우고,

싱크대를 달고, 방과 부엌 높이가 같아 지게 된 입식부엌으로 고치게 되었지요.

그렇게 입식 부엌을 만들면서 정지간에 있었던 연탄아궁이는 따로 보일러실을 차리게 되었고, 2구 3탄짜리 보일러는

아주 추울 때는 양쪽다 연탄불을 때었고, 엔간한 추위에는 한 화덕만 연탄불을 때었지만, 그동안 욕조도 넣은 욕실겸, 화장실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 연탄보일러가 기름보일러가 되었고, 가스 보일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집도 이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고쳐 오는 동안 만능으로 주로 동네 고치는 일을 하셨던 분들이 와 공사도 했었지만, 늘 그분들을 부를 수 없어

준서외할배가 일을 하고 준서할미는 보조를 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다보니 일에는 시원찮은 준서할미는 준서외할배 힘은 들고 마누가 보조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꾸지람을 했고,

준서할미는 그래도 전전후 일꾼이다 뭐.... 라 맞 받아 치기도 하면서 오늘 날 까지 입니다.

한옥에서는 소소하게 고치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번 일은 2층 한세대가 이사를 가고, 새로 이사 오기 전까지 몇일 있어 시작한 일이였습니다.

이번 페인트일을 준서할미가 하면 좋겠다로 시작한 일이였고, 우리들 솜씨로는 하루에 하기 버거운 일이였는데도

어제 일몰직전까지 끝을 내었습니다.

 

하다 배고파서 지치면 않되겠다 싶어 아침밥을 삼계탕으로 끓였습니다.

그러면 점심밥까지 해결이 되니까요.

생강도, 마늘도, 엄나무, 오가피나무, 통후추를 넣고, 생닭도 조금 더 맛나다는 것을 넣고, 찹쌀도 주머니에 넣고,

끓이면,괜찮은 삼계탕이 됩니다.

어두워 질려는 때 일은 끝났고, 우리 거처로 올라와 저녁을 시켜 먹고 나니,온몸은 물 먹은 솜이되고, 목 위로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준서할미가 자리 펴고 눕고 나면, 혹여 일어 나야 하는 일이 있어도 준서외할배가 다 해 줍니다.

마눌이 깡으로 하루 종일 일을 한것을 아니까요.

 

몸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누워 있으면서, 천장도 보이고, 우리집 문도, 창도 보이지 뭡니까?

둘이서 하면 빨리는 못해도 도배도, 실내 페인트칠은 처음 해 보았지만, 페인트 칠도 하니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도 하지 않을 겁니다.

준서할미 무릎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예전 1970년대만 해도 도배도, 대문 철대문도 다 집에서 했었지, 요즈음처럼 일을 떼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준서외할배와 한 일 중 제일 큰 일었던 것은 구들장 온돌 위에 PVC 파이프를 깔고 새마을 보일러를 까는 일은 한 것입니다.

아 또 있네요. 공사을 하고 뜯어내어 놓은 세멘트 브로꼬를 잘게 부셔 세멘트와 모래를 섞어, 몰탈을 만들어 콩크리트 처럼 해

아이들 물놀이 하는 긴 수조를 만들었지요.

그 때는 여름이면 조카, 생질들이 우리집으로 와 공부하면서 여름방학을 보내었으니까요. 

 

준서할미가 무슨 전전후 일꾼이겠습니까?

준서외할배 도와 주다보면 잘 못해 뭐라하면 입막음으로 하는 말이 - 전전후 일꾼이지요.

그러면 준서외할배가 웃거든요. 빙긋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