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보라색 고무신이였는데, 요즈음은 플라스틱 재질의 신 같다.
준서에미가 고등학생 때 였지 싶습니다.
냉장고에 꿀 한되정도 가 들어가는 유리병에 고추장을 담아 넣어 놓았지요.
병 뚜겅이 덜 잠겼던지 병뚜겅을 쥐고 들어 내는데, 병이 발등에 떨어졌고, 처음에는 쏙 들어 가더니 이내 퉁퉁 부었습니다.
준서외할아버지는 집에 없었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지요.
대문 밖만 나가면, 아니 전화연락만 해도 이웃 사촌들이 놀라 뛰어 오는 그런 동네 였습니다.
일단 친구 한명에게 연락을 했더니, 방앗간을 하는 다른 친구의 남편이 왔습니다.
자기 오트바이 뒷쪽에 타고 병원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데, 아무리 아침, 저녁으로 보는 친구 남편이라도
남의 남자를 뒷쪽에서나마 잡고 갈 배짱이 없었지요.
그건 지금도 못하지 싶습니다.
친구가 저런 색의 고무신을 가져 와 신으라고 하는데, 퉁퉁 부은 발이 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고무신은 백고무신만 있는 줄 알았는데, 보라색 고무신이 있는 줄 몰랐지요.
형태는 백고무신이라면 남자고무신 형태의.
비닐 봉지에 발을 넣고, 테프로 비닐봉지를 발 모양대로 붙이고는 병원으로 갔더니, 다행히 뼈는 상하지 않았다 했습니다.
보라색 고무신을 친구가 사 왔는데, 다친 부위가 딱 고무신을 신으면 닿는 부위라 비닐로 감싸고 다녔었고, 그러다 부기가 빠지고는
보라색 고무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살고 있던 종동서가 갑작스레 풍이 와 중환자 실에 입원해 있었고, 혼수상태이지만 살았을제 볼 사람은
올라 오라는 전화에 친척들이 서울로 갔습니다.
밤 기차를 타고 갔었는데, 보라색고무신을 신을 수 밖에 없는 준서할미는 보라색 고무신을 신으며 흰고무신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했었지요.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해 절면서 가는 처지라 작은 등산 가방을 메고, 그렇게 서울을 갔었댔습니다.
친정 숙부님께서 서울 강남에서 사셨고, 그래도 행세하시고 사시던 시절이라, 숙모님께 제 형색을 말씀 드렸더니,
경비실 보기 부끄럽다시며 그냥 내려 가라 하셔서 그냥 집으로 내려 왔었던 적이 있습니다.
딸과 모녀지간처럼 지냈던 띠동갑인 숙모이셨기에 그런 말 하실 수 있었지 합니다.
냇가에 다슬기를 잡으러 들어 갈 때 발바닥 보호 차원에서 신을 신고 끈으로 메고, 신는다고 했습니다.
준서할미 친구의 경우에는요.
아니면 여름 산 골짜기 물가에서도 편리한 신발이라 했습니다.
그 때의 제 행색을 생각해보니 참 우스운 행색이었습니다.
서울까지 보라색 고무신을 신고 작은 등산가방을 메고 기차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대구로 내려 올 때는 기차 시간이 남아
동대문 시장인가? 남대문 시장인가? 를 또 갔었으니....
참 예전 일입니다.
블벗님이신 제비꽃님 방에서 저 신발을 보니 옛 생각이 나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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