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2일
2021년 섣달 스무날,
적다 보니 양력은 22일이라 하고,
음력은 스무날이라고 부르고 있었네.
고추장을 담으려고 시작한 날이라 적었다.
찹쌀 4Kg을 어제 밤새 물에 담가 두었다.
방앗간에 갈러 가는데 늙은 호박 2개가 있어 맵쌀, 찹쌀을 반반으로 섞어서,
2Kg도 따로 담가 두었다.
이번 호박 죽은 범벅으로 끓이지 않고, 호박 향이 많이 나게 호박에 아주 조금의 물을 붓고
삶았다.
팥을 2컵 따로 삶아서 호박이 다 익어 주걱으로 툭툭 치면서 대강 잘게 해서,
팥죽에 넣듯이 새알심을 만들어 죽에 비해서 적은 양인 70개의 새알심을 넣었다.
반죽도 남았는데도 더 넣지 않았고,
점심을 먹은 뒤라 간만 보았지 저녁 식사로 먹으려고 먹지는 않았는데,
호박죽을 끓인 3중바닥 스덴리이스 곰통에 찹쌀가루를 삭혀야 해서
약간 식혀서 퍼 놓고, 솥에 남아 있는 것을 긁으니 한 숟가락 정도 되는 것을 맛 보았더니
호박향이 아주 좋았다.
고추장을 언제나 음력 섣달에 담았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초봄까지 맛이 들고, 늦봄에는 김치냉장고에 퍼 넣는다.
찹쌀을 삭혀서 가루가 다 삭아 지면 스텐 망으로 남은 건지를 건져 보았자.
주머니에 넣고 꼭 짜면 한줌 정도만 나온다.
그 물을 달여서 그 졸여진 것만으로 고추장을 담으니 방부제라고는 하나도 들어 가지 않는다.
파는 진뜩한 물엿을 먹지 않으니.
에피소드
동서들이 결혼해 10년이 지나도 집 간장, 된장, 고추장까지 가져 갔다.
간장, 된장이야 준다고 생각하지만 고추장은 사 먹던지 담으려고 노력을 하던지
하지 않아서,
담아 놓고 으례 가지고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못 주겠다고 할 수도 없고,
내 나이 40대 후반에 그 해 고추장을 담지 않았다.
마트에서 파는 고추장을 제법 큰 유리병에 들어 있는 것을 사서 냉장고에 넣고 먹었는데,
뚜겅을 야무지게 닫지 않았든지 필요 해서 내다가,발가락 바로 위 발등에 떨어졌는데 처음은
그 떨어지 곳이 쑥 들어 가더니 신발도 신지 못하게 부어 올랐다.
그러니 뼈는 괜찮은지? 병원에 가야 하는데, 2차로 도로까지 걸어 가야 택시라도 타는데,
이웃 친구가 자기 남편 오토바이를 타고 가라 했다.
오토바이도 한번도 탄 적도 없고, 남의 남편을 허리를 뒤에서 안고 도저히 그렇게 갈 수 없었다.
신발이 들어 가지 않아서 비닐에 발을 넣고 윗쪽은 묶고 다담 다담 아픈것을 참고 나가서 택시를 타고
갔고,
올 때는 집 근처까지 청소차가 드나드는 길이 있어서, 타고 온 택시는 안까지 타고 올 수 있었던 적이 있다.
김장김치도 가지고 가는데,
김장김치 절여 놓고, 멸치젓갈을 사 와서 밤에 연탄화로를 마당에 놓고, 물을 약간 부어 달였다.
얹어 놓았다 끓으려 하면 거품을 걷어 내느라 따뜻한 방에 있다 나와서 참 춥고 손도 시렸다.
지금 생각하면 일이사 하면 되는 것을,
그 때는 젊었으니 동서들은 편해서 좋겠다 싶었지.
김치를 100포기 정도 할려면, 갈 때는 버스 타고 가고,
채소 도매하는 장인데 그곳에는 자경농들도 리어카에 배추를 싣고 팔러 왔다.
시어머니와 함께 가서 배추 한리어카 사서는 팔았던 아저씨는 앞에서 끌고,
오다 보면 내리막도, 오르막도 있는 길을 시어머님과 내가 밀어 주기도 하면서
버스 5정류장은 넘었지 싶은 거리를 배추를 사서 걸어 왔었다.
배추를 사 오면 손질 해서 절이고, 새벽에 뜨근뜨근한 물 옆에 두고 시어머님과
마당에서 씻었고,
결혼해서 몇년간은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이었다.
고추장
찹쌀 4Kg, 엿질금 2봉지( 자경농이 집에서 만들어 온 것,
딱 붙어 서듯이 자주 드나들면서 하지 못하고,
저녁 때 시작해서 가스불을 두번 껏다가( 엿질금물이 따근따근해서) 다시 켜고
하다 자정 무렵에는 가스 불을 끄고 05시 무렵 보았더니 단술 색의 물과
건지는 손으로 밀어보니 다 삭은 듯 했다.
그런데 평소 보다는 건지가 많더니 엿물이 적었다.
고추가루 2근을 개었다.
고추장은 참 맛나게 되었다.
남편이 간을 본 뒤 자꾸 먹고 싶은 맛이라 해서,
냉동실에 손질 된 오징어를 간 없이 볶아서 상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