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할아버지께서는 일제 치하에 아내와 자식 넷을 데리고 중국 상해로 가셨다 합니다.
여의치 않으셔서 우리 어머니께서 어린아이일 적에 잠시 한국의 고향으로 나오셔서 사셨는데, 그 때가 봄이였던 모양입니다.
동네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놀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쪽파가 한창 봄 기운이 올라) 쪽파가 그렇게 맛나 보여서
양념장에 넣으면 맛있겠다 싶어 몇 뿌리 뽑아 왔더라 합니다.
외할아버지 남의 밭의 것을 주인 허락도 얻지 않고, 뽑아 왔다고 혼을 내시면서 이 파 들고 그 집에 가서 미안하다 하고,(친척이고)
그 밭에 심어 놓고 오라고 하시더라 해서 그리 하기는 했다 하셨습니다.
저희 형제들에게 정직함이란 철처하게 훈육 시키셨습니다.
몇 달 한국에 있다가 다시 일본으로 가셔서 위로 세 자식들은 결혼을 하고 모두 해방과 함께 한국으로 나오셨다 합니다.
일본인 저도 싫어 하는데, 또 일본은 정직을 참으로 중요시 하는 나라라 하셨습니다.
실상 발갛에 익어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 단감이사 금방 따도 먹을 수 있지만, 떫은 감은 앞니로 조금 깨물어도,
떫어서 한잎 가득 떫은 맛이 가득하고 뱉어 내어도 한참을 입 안에 떫은 맛으로 차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하나 따고 싶은 맘도
어찌 보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변해서 그리하면 도둑으로 몰면 도둑이 되는 그런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한 3~4년 전에 감식초를 담고 싶었는데, 어느 블로그에서 감식초를 담고 싶어서 스크랲으로 가져다 놓은 레시피가 있었습니다.
그냥 댓글에 잘 보았다고 감식초는 한 번 담아 보고 싶었다고 글을 적었는데, 주소를 주면 산감을 따서 보내 주시겠다고
했었고, 주소를 보내고 감을 얻어서 감식초를 담아는 보았는데,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돈은 받지 않으려 하셔서 드리지도 못했었습니다.
오랫동안 블로그 벗으로 지낸 분도 아니고, 그냥 지나 가는 길에 들린 사람일 뿐인데, 그렇게 생감을 보내 주셨던 것이지요.
지금까지도 그 블로그에는 로그인도 귀찮아서 하지 않고, 마실 다니다 가게 되는데 가끔 가서 새 글이 있으면 보고 오는데,
도처에 열린 맘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준서할미가 감 수확철이 되면 대봉감을 2박스 정도 사서 홍시를 만들어 먹습니다.
작년에는 한 상자 더 사서 감홍시를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 놓았더니 해동해서 먹는 맛이 없어져서 홍시 맛을 잃어 버렸습니다.
올 해는 대봉감을 사지 않을 겁니다.
작년에는 감이 풍년이어서 이웃에서 사돈댁에 감 따는 일을 도우려고 해 마다 가는데, 딱이 품삯은 아니지만,
올 때 감을 여러 상자 주시는데, 올 해는 풍년이어서 8상자 받아 왔다고 사라고 했습니다.
2상자에 4만원을 주고 사서 감말랭이를 해서 아이들도 주고 우리도 먹고 했습니다만,
그렇게 감 한박스 값이 거금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따는 재미로 따 보고 싶은 것이고, 또 농촌에서는 그런 길 손이 한 둘이 아니고, 하나를 따면 여러개를 따 가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 인심이 자꾸 자꾸 박해 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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