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택배 차 타고 온 귀한 사과 입니다.
사과 향도,맛도 일반 사과와는 다르게 특이하고,
아마도 백화점 같은 곳에서 사과 바구니를 만들 때 넣지 싶은 사과 입니다.
사과 한알의 크기도 상품인 큰 것입니다.
달랑 2식구 먹고 살 장 담는다고 큰 항아리 씻다가 항아리를 놓쳐서 그 항아리 깨지지 않게 하겠다고,
본능적으로 항아리 잡다가 엉덩이 뼈를 다쳐서 수술하고 반듯하게 누워 있으라는 요양기간이 3달,
이제 겨우 식당에 가서 앉아서 밥을 먹고, 시내 버스 타고 물리 치료 다닌다는 친구와 밥 한끼 먹으러 안동으로 다녀 왔습니다.
한 친구가 사정으로 가지 못하고, 셋이서 타고 가는 승용차는 넓었고, 사람이 적으니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참 오랫만에 수다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수다가 아닌 그런 이야기들을 오가면서 한 것이,
커피잔 앞에다 놓고, 커피숍에서 이야기 하는 것보다 더 진지하게 했습니다.
휴계소도 들리지 않고, 차 안에서 1시간 반 정도의 이야기 시간이 있었습니다.
안동의 친구 생활 근거지는 우리 도시인데 사업상 이사를 갔었고, 시골로 들어 가 집을 얻어서,
그 동네 어르신들 5분이 계셨는데, 친구는 자기가 집에 한가하게 있는 날 어르신들이 놀러 오시면 매번 뜨신 점심을 해 드렸고,
메주 끓이는 날은 늘 처럼 따신 점심하고 있으면 마당에 솥 걸어 놓은 것에 동네어르신들이 메주 콩 삶으시고,
메주 디디고, 그렇게 하하 하하로 즐거운 날이 되었고,
장 담을 준비만 해 두면 장 담는 것도 어르신들 중에 유난하게 장이 맛나는 할머니 한 분이 장을 담으셨고,
설 명절 앞두고는 2식구에 먹지도 않는데, 어리(강정)하라고 하시고 준비 해 드리면 일도 아니게 만들어 주셨고,
양파 수확 철이면 아침에 자고 나면 양파 한 자루 놓였고, 아침에 자고 나면 사과 봉지 놓였고,
여러 집에서 주시는 것이라, 그 양파, 사과 다 못 먹어서 지인들에게 나눠 가면서 먹었다 했습니다.
외출 했다 들어 갈 때는 어르신들의 간식거리를 사다 드리고 그렇게 친정 모친처럼, 딸처럼 의지하고 살았다 했습니다.
이사 들어 가서 어언 7년이 흘렀고, 한 2년 동안에 저 세상으로 가신 분, 요양소로 가신 분 이제 한 분만 계셔서
회복기간에 시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시골 집이라 생활하기도 불편했고, 가신 할머니들 생각도 나서 또 쓸쓸 하기도 해서 였다 합니다.
동네에 살던 딸 같았던 젊은 사람이,
사고를 당 해서 누워서 지내다,
시내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그 사람이 상추 심어 먹던 작은 터에
동네 어르신께서 김장배추 모종을 사서 심어 주시고,
쪽파도 심어 주셨다는데, 그 쪽파를 친구가 뽑아 준 것이라 역시나 귀한 쪽파 입니다.
배는 작지만 친환경으로 농사 지은 것입니다.
감기약차를 만들 때 넣을 것으로 이런 배를 찾아도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농장으로 들어 가시면,
저녁 때 시내 집으로 돌아 오시고, 하니,
택배 보내는 일이 어려운 곳에서 택배 차 타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올바른 인간 관계라는 것을 이 사람들이 알겠나? 싶을 정도의 돋대기 시장 같은 곳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물론 시간으로 치면 10년을 보낸 친구들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 지낸 사람들이기는 해도 그냥 밥 한번 먹자고
다시 만났던 5사람들이 다시 만나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무엇이 장점인지도 모르고 장점은 녹아 버리고,
단점은 서로 서로 이해 하면서 지내 왔었습니다.
다들 남편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너무 잘 하고 사는 사람들이어서 그 중 한 사람은 여기는 오줄 없는 사람만 있다 해서
웃자고 하는 말에 그냥 따라 하하 하하로 웃습니다.
아들네 식구 네사람, 초등학교 2학년, 7살난 아이 둘까지 식구가 6명인데도 남편이 냄비 밥을 좋아 해서 먹고 남지 않게
밥을 하는데도 식은 밥이 남을 때가 있어서 며느리와 자기가 식은 밥을 먹을 때도 있는데,
어느 날 며느리가 어머니 저도 금방 한 밥 먹고 싶다 해서 밥의 양은 더 많아 지게 되고, 식은 밥은 비례해서 더 나오고
자기는 언제나 금방 지은 밥은 먹지 못한다 했습니다.
전기 압력 밥솥에 밥을 하면 먹고 보온으로 남아 있는 이 편리한 세상에서, 남편이 금방해서 퍼 주는 냄비밥을
좋아 한다고, 아침 먹고 나가면 저녁 식사 집에서 하는데, 다시 냄비밥해서 따근따근 할 때 식사 차려 준다니.
그러니 다른 사람이, 나도 식은 밥만 먹는다면서, 딸이고, 며느리이고, 식은 밥 주지 못하겠더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챙기지 못하는 [오줄 없다]고 하지 싶었습니다.
요즘 노인분들 혼자 사셔도 외롭지만,
아들집은 없고, 며느리집만 있는 세상에서 며느리에게 얹혀 살아도,
며느리에게 대접 받기는 커녕 눈치 보아야 하고, 자식들 다 결혼시켜 내 보내고 두 노인네 사시다 영감님 저 세상 가시고
혼자 살게 되니, 도시에서 사는 형편이 여의치 않던 딸이, 엄마 모시고 산다면서 시골 친정집 들어 와서는,
딸이 제 살림마냥 야금야금 살림 차지가 되고 안방에 거처가 있어도 뒷방 노인네가 되신 어르신들이,
그 다섯분 중 어느 댁 할머니는 모여서 뜨신 밥 먹을 때 먹는다고, 가끔식 된장 한 사발 떠 내어 오니,
된장 뜨러 장독을 열었다가 엄마는.... 왜 된장 퍼 돌리노?
그렇게 된장 한 사발의 권리도 없게 되어 버린 할머니들께서는 외롭습니다.
동네에 40대 후반의 사람이 이사를 오고, 놀러 가면 따신 점심 해 드리고, 맛나는 간식 사다 드리고, 명절이면
양말이라도 사 드리고, 내 딸은 타박이 일수요 눌 흘김도 예사인데, 뭔 말을 할라치면 한 마디로 막아 버리고,
40대 후반의 젊은 사람이 사람 대접을 해 주었으니 얼마나 살갑고 예뻐셨을까요?
한 분 남으신 어르신 께서는 친구들도 다 떠나 버리고, 젊은 사람은 아프지 않았다면 남아 있었을텐데,
또 이사를 가버리고, 그래도 그 정으로 김장 배추도 심어 주시고, 쪽파도 심어 주셨던가 봅니다.
실상 그 친구는 준서할미와 15살 차이가 나는 사람이라 턱걸이로 우리 세대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턱걸이 우리세대 마저 가고 나면, 정말로 옛이야기 속에서나 듣기나 할 일들입니다.
운전하는 친구는 운전대를 잡은지가 30년이 넘은 사람이라, 토요일이어서 조금만 더 있으면 도로 정체가 될거라며
휴계소에도 한번 들어 가지 않고, 안동까지 갔는데, 모처럼 속도 붙은 차를 타는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오래 된 친구들은 서로 서로 양보를 하게 됩니다.
또 서로 서로 배려를 하게 됩니다.
사람 향기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고, 즐겁게 하루를 잘 보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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