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1970년대의 지난 세월과 2016년 요즘 세태

이쁜준서 2016. 1. 13. 05:31

 

 

은행 3Kg을 술을 담으려고 살짝 먼지만 씻어서 말리는 중입니다.

한 3년 묵히면 좋은 약성을 가진 술이 된다고 합니다.

 

 

 

 

3년정도 숙성해서 약술로 먹을 것이라

큰병으로  2병을 담았습니다.

 

 

예전, 아니 예전까지는 아니어도 전기 밥솥이 아니고, 밥은 지을 수 없고, 밥을 퍼 넣어 놓으면 보온밥솥이란 것이 먼저 나왔습니다.

우리가 전기보온 밥솥을 산 것이 1974년도였는데, 아마도 2~3년전에 나왔지 싶고,

그 전에는 겨울에는 아침 밥을 해서 양은이나  스텐 찬합에 퍼서 온돌방 아랫목에 작은 이불에 묻어 두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 미처 집에 오지 않은 식구 밥은 놋그릇에 퍼서 담요에 둘둑 말아서 다시  온돌방 아랫목에 묻어 두었었는데,

보온 전용 밥솥은 정말로 획기적인 것이였습니다.

 

가전제품 중에서 냉장고보다 세탁기가 더 획기적이였습니다.

우리가 세탁기를 산 것은 1984년도 1월이였습니다.

냉장고는 잘 상하지 않고, 보관이 되는 것이고, 얼음도  먹을 수 있었지만, 냉장고가 없을 때에도 반찬을 여러가지 하지 않았을 때이고,

반찬 양도 적게 했기에 여름이라고 반찬을 굳이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고, 얼음이야 여름에 수박 한덩이 사 와

화채 만들어 먹을 때였지, 여름에는 굳이 얼음물이 아니어도 상온의 물을 먹었고, 어쩌면 건강에도 상온의 물이 더 나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세탁기가 일반화 되기 전에 탈수기란 것이 먼저 나왔고,

수도물도 밤에만 나왔기에 밤에 물을 받아 두었다가 제법 큰 다라이에 물을 퍼 담아서 빨래를 담가서 빨래판을 놓고, 빨래비누로

손으로 씻어서 행굼을 할 때는 다라이에 물을 퍼 담고, 3~4회 행구었지요.

그래서는 손으로 짤 수 있는 한 짜서 빨래줄에 널어 놓으면 면 기저귀처럼 얇은 것은 빨래에서 물이 흐르지 않았지만,

약간 두꺼운 것에서  겨울 옷 같은 것은 빨래에서 물이 줄줄 흐르다 바람과 햇빛에 말랐었고, 그렇게 빨래는 늘 해 왔기에

불편하다는 생각도 못 해 왔었는데,

우리가 세탁기를 산 것은 1984년도 1월이었고, 2~3년전부터는 수도물이 24시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세탁기가 우리나라에 일반 가정에서  필수품으로 들여 지던 때는 수도물이 시간제로 나오거나, 밤에만 나오거나 하지 않고

24시간 수도물이 나오게 되고 부터였습니다.

그러니 세탁기는 전기보온밥솥이  획기적인 것보다 훨씬 더 획기적인 것이였습니다.

 

1970년 초기부터 가전제품- 세탁기, 냉장고들이 일반화 해져서 1~2년 앞서 산 집도 있고, 늦게 산 집도 있었지만,

그 당시 우리 한옥 집에는 2세대가 세를 들고 있었는데, 여름 날 아주 더운 여름 날에는 어느 집 가장이라도 수박 한덩이 사고,

얼음 한덩이 사서 집으로 오면 바늘로 얼음 깨고, 수박 긁는 사람, 설탕이 있는 집에는 설탕을 가져 오고,

막걸리 마시는 양은그릇(여럿이 나누어 먹어야 하는데  그릇 크기가 적당해서)은 3세대 집에 것을 다 가져 나오고,

들마루에 앉아서 어른 아이 함께 - 참말로 시원한 수박 화채를 먹었지요.

어린아이들은 수박을 더 넣어서 뜨고, 조금은 내용의 실한 정도가 다르기는 했지만,

실상 화채라 하기에는 모자란 얼음이 녹아 든 얼음물에 수박이 몇점있고, 시원한 수박향이 나는 그런 것이긴 했지만요.

 

마당 안 집의 식구들만 먹는 것이 아니고, 앞, 뒷집 동네 시어머님 친구분들고 모시고 와서 함께 했었지요.

냉장고를 한 두해 먼저 들였던 집에서는 한 여름에 양푼에 얼음 얼려서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냉장고가 한 집 두 집 들여 지면서 여름날 한 마당 모여서 먹던 시원한 수박 화채 먹는 그 정겨움이 사라졌지요.

그러면서 일반 서민들도 나라 살림이 나아지면서 살기가 나아져서 수박 화채보다는 냉장고에 수박을 사 넣었다가

시원해진 수박 조각을 먹을 수 있었지요.

 

요즘 TV드라마 중에 쌍문동에서 1988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실상은 우리 사회가 1970년대 초까지 그렇게 살았고,

그 드라마에는 1988년도라서,

집집마다 냉장고도 있고, 반지하에 살아도  푹 꺼진 정지간이 아니고, 주방이라 부르는 그런 주방이 이던데,

우리 사회 보통 서민 가정에서는 1970년 초까지는 연탄불에 밥을 해 먹었고, 석유곤로 하나만 더 보태어도  석유곤로는 화력이

높아서 빨리 끓어서 많은 양의 국을 밥을 연탄불에 지으면서  동시에 국을 끓일 수 있는 엄청 편리한 것이였지요.

 

응답하라 1988년 드라마는 화려한 텔런트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어도 정말 우리가 1900년이 되기 전, 1988년만 해도

이웃간에 어떤 맘으로 정 나누면서 지냈던지를 보여 주기에 감동을 줍니다.

요즘 드라마는 사랑의 할 말을 할 때나, 너무  억울해도 참는 것은 없고, 행동으로 옮기지만,

정말 절절이 사랑해도 그 시절은 혼자서 참고 그 사랑을 맘으로 키워 가던 그런 시절이였지요.

 

그 드라마에 보면 고시촌으로 들어 가 고시공부 하는 딸에게 엄마가 동생편으로 반찬을 해 보냈는데,

그 시절 꽃게를 찬합 가득하게 살려면 참 큰 맘 먹어야 하는데, 고시공부 하는 딸이 평소에 잘 먹는,

꽃게 몸통만 반찬을 해서 보내고 다리는 버리지 못하고,그 많은 다리를 반찬으로 해서 집에서 부모들이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짖말 같지만, 그 때 그 시절에는 그랬습니다.

그 시절 부모 사랑은 그렇게 애절했고, 간절한 것이였습니다.

모정은 세월이 어떻게 변하던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맘이 됩니다.

 

 

 

건멸치는  겉으로 보아서 맛을 알지 못합니다.

이 멸치는 육수 내기에는 크기가 작아도 맛이 9월에 잡은

맛이 있는 건멸치 입니다.

아마도 10년전만 해도 건멸치 한 박스에 3Kg 이었다가

건멸치 값이 유례 없이 고가가 되면서 2Kg으로 되더니

이제는 1,5Kg으로 중량이 변했습니다.

 

맛나는 멸치를 이렇게 내장만 빼고 머리, 몸통을 다듬어서

팬에 살짝 듞어서 멸치, 건새우, 마른 표고버섯을 각각 따로 믹서기에 갈아서

섞어서 양념으로 사용합니다.

 

 

 

준서할미 세대는 면 단위의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도 있지만, 고등학교가 없는 면 단위 여서

더 좋은 고등학교를 갈려고,군 단위의 중학교에 보내고, 방 한칸 얻어서 자취를 하면 고향을 떠나서 가 있는 것이고,

고등학교는 큰 도시로 보냈기에 유학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준서할미는 군 단위 중학교를 갔었지만, 외갓집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는 부산이란 대도시로 나와서 처음에는

같은 고향 선배와 동기들과 자취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부산은 산동네가 많아서 학교에서 가까운 산동네 방 한칸에서 여자고등학생 셋이서 자취를 했었지요.

지금 세월에는 너무도 편하게 변해서,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보내도 유학이라 하지 않지요.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나가야 유학이라 하지요.

 

준서할미가 중학생인 때에 외갓집에서 다녔는데, 그 때 이모,  외삼촌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셨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큰 아들은 면사에 나가고, 작은 아들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셨는데, 작은 아들이 산에서 나무를 해서 소구르마에 싣고,

장날 팔러 나가서는 어느 날 나무 팔은 것을 차비로 소구르마 장마당에 그냥 두고 부산으로 갔다고, 한동안은 집에도 못 오게 하셨고,

대학 다닐 때는 집에는 올 수 있었지만 쌀 한말도 가지고 못가게 하셔서 늘 쌀은 담 넘어로 넘기고,

그 쌀 포대기에는 씻은 무, 씻은 고구마 몇개도 들어 있었는데,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의 변두리 자취방까지 가지고 갔어야 했는데, 외삼촌과 이모는 어떻게 그 무거운 것을 들고 가셨을까?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분들이 4.19세대 이시지요.

 

2016년이니  지금을 이야기 해 보면,

큰 틀에서 보면 배고픔은 면한 사람들이 많고, TV에서 무엇을 어떻게 맛나게 먹을까?

이런 저런 프로에서 남자들이 음식을 해 먹고, 한국에서 어떤 음식은 전국에서 어떤 집이 맛난가? 를 경쟁하는 모습을

실제 실연으로 보여 주기까지 합니다.

 

나라 경제력은 정말로 어려워 보이는데, 각 가정에서 먹고 사는 모습이나, 아이들 사교육에 들이는 돈은 1970년처럼

줄이지 못합니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 지면 우리 세대들처럼 정말로 어렵게 살아 본 적이 없는 우리 자식 세대들이 어떻게 견딜까? 싶어서

나라 경제가 우리 세대들에게도 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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