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로덴드롬
아랫쪽은 꽃이 피었다 윗쪽 빨간 꽃이 떨어지고 녹색으로 되었다. 가을이 되니 보라색으로 변했고,
현관 앞에 놓였던 자리에 해가 모자라니 햇빛을 찾아 꽃줄기가 쑥 자라 올라서
꽃을 피우고는 있습니다.
얘도 올 해의 황금기는 지났습니다.
추운 겨울을 실내에서 나고, 내년 4월에 밖으로 나가
분갈이를 한번 하고 나서야 다시 일년의 황금기가 올 것입니다.
지금 있는 자리가 다육이 자리였는데, 다육이 햇빛가리개도 다 뜯어 내고,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현관 문 열면 꽃을 본다고 올려 주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쾌청은 아니어도 햇빛이 나오다 잿빛 하늘이 되었다 해도 그래도 맑은 날씨이다.
가을인데도 되집어 본 날씨는 일요일은 쾌청이었고, 월요일은 오전에는 흐리다가 비가 오전 중에 시작 되었고,
화요일은 종일 흐렸고, 어제 수요일도 흐렸고,어제 화요일에 널었던 빨래를 다시 널었어도 흐린 날에 마른 빨래는
손 촉감에 뽀송뽀송하지 않다.
여주와 수세미를 썰어서 말리다 보니 날씨가 기억 됩니다.
오늘은 그래도 빨래는 제법 뽀송하게 마를 듯한 날씨이다.
화분에 물 주는 것을 물이 빨리 마르는 것 몇개만 찾아서 주고 이틀을 물을 주지 않았더니, 잎사귀들이 시들 해 진것들이 생겼다.
잎들이 시들해 겉 흙이 말라졌던 화분에는 물을 샤워 물살로 한번 주고 다시 한번을 더 주어야 물이 화분의 흙 속으로 들어 간다.
볏짚 태운 재를 숙성중이었는데, 이제는 물에 희석해서 주어야 겠다 했는데, 잊어 버리고,
유박거름을 넣어 버려서 또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겠다.
어제 저녁 때 유박거름을 넣고 돌아서니 기억이 났다.
예전 초등학생인 때, 고향에서
입담도 걸고, 몸도 싸답워서 어떤 사람도 한 수 주고 상대 했던 친척 고모가 한 분 계셨다.
우리 친 고모님과는 6촌간이셨고, 남자 형제들이 대 도시에서 일찍 자리 잡고 있었고, 부모님만 사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니, 시집 간 딸들이 솔가를 해서 친정 집으로 이사 와서는 친정 전답 농사 짓고 살게 되어서
시집 간 딸네들이 몇집 있게 된 곳이 우리 고향이었다.
그 때 그렇게 친정 집으로 온 후, 울산이 도시화가 되고, 인구가 늘어 나면서 농산물, 두부등을 울산으로 가져다 팔고,
붙이던 친정 전답 사게 되고, 돈이 더 저축 되면 고향 다른 전답도 사게 되고, 다들 부자가 되셨다.
7촌 고모가 어제 저녁밥 해 먹고 설겆이 하고는 껌껌 한데 거름 무데기에 설겆이 물 버린다는 것이 사구(옹기그릇으로 아래보다 위가 넓은
설겆이 그릇이나 다용도로 사용 했었던) 채로 던져 버려서 사구를 깨어 버렸다고 걸진 이바구를 하시면서,
그래도 괜찮다. 시어머니도 않계시니 내가 어른인데 누가 나를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사구는 돈 벌어 사면 된다고.
세월 살다 보니 시어머님도 계시지 않고, 준서할미가 어른이 되었고,
할려던 일도 잊어 버리기도 하고, 냄비도 태워 먹기도 하고( 왜 냄비를 태우면 태워 먹는다고 했는지?)
그래도 크게 표 나는 일이 아니면 준서외할아버지도 모를 때가 더 많고, 한 소리 들을 일이 없다.
준서외할아버지가 알면 타임워치 맞추어 두라는데, 왜 그냥 있다 냄비 태우냐?고 하지만.
그런데 내가 젊어서 시어머니 잔소리 듣고, 눈치 보았고, 내 자식들 키우고, 고등학생 아이들 자율학습 한다고,
새벽에 일어 나 도시락 2개 사서 보내던 그 시절이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을 그 시절은 몰랐다.
그 시절에는,
김장김치도 백김치, 파김치, 고들빼기 김치, 알타리김치, 배추김장 김치, 오그락지, 등을 담았고,
몇년간은 바로 아래 동서 김장도 해서 주었고, 시집 간 막내 시누이 김장도 해 주었었고,
간장, 된장은 십수년도 더 담아서 주었었다.
단풍콩잎 삭힌 것, 단풍깻잎 삭힌것, 살짝 삶아서 물 갈아 가면서 우려 내어서 한 잎 한 잎 씻어서 다시 간추려서
담아 놓으면 섣달 기제사 때 우리 동서도, 종동서도, 종질부도 와서는 얻어 가면, 우리 시엄니 여자라고 생겨서
콩잎, 깻잎, 파지 못 담는 사람이 있나? 게을러서 즈그는 하기 싫어서 와서 얻어 간다고 주지 마라 하시기도 했는데,
이제 김장김치도 배추김치만,
콩잎, 깻잎지도 우리 아이들 줄것만 조금 담지 예전처럼 담아지지 않는다.
내가 담았던 그 백김치 나 자신도 먹고 싶은데도 담아지지 않고,
인생은 칩실부터라기도 하지만, 젊은 날로 돌아 갈 수는 없고, 수명은 길어져서 하는 말이지
준서할미가 옥상에 정원을 만들어 놓고, 즐기지는 하지만, - 그러니 내가 즐길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 놓았지만-
준서할미가 살아 보니 그나마 50대 후반까지와 환갑을 넘긴 나이는 참 차이가 많다.
환갑을 넘은 지금을 생각해 보면, 한 해 한 해 갈수록, 체력은 저하 되고, 허리도 무릎도 자주 아프지만,
감성과 지혜는 젊은 날보다 깊다.
내 인생의 황금기인 때는 아이들 키운다고 일거리 많았고, 맏이라 형제들이 모이니 명절이면 참으로 일이 많았다.
시아버님 계시지 않아서 어린 동생 둘의 학부형이 되는 가장으로 시작한 살림은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준서할미 손으로 시동생 둘, 시누이 결혼, 세번의 결혼식을 치루었고,
어린 내 자식들 키우던 그 시절이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 때가 왜 황금기인가?
뭐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체력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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