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큰 소와 어린아이의 기 싸움

이쁜준서 2014. 6. 27. 05:42

 

부산에서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그 시절은 4월이 신학기여서 시골 아버지의 고향으로 신학기에

전학을 갔다.

동해남부선이 다니고, 국도도 있고, 마을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산이 시작되는 곳이니 산골도 아닌 곳이였지만,

전깃불이 없어서 산골 같은  그런 마을이였다.

 

그 때 시골에 갔더니, 또래 아이들은 학교를 갔다 오면 호미들고, 소쿠리 들고 들로 소 풀  캐러 다녔고,

생전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도 따라 나섰다.

4월은 풀들이 조금 자랐을 때여서 호미로 풀을 캐어서 대나무로 길쭉하게 만든 재를 퍼 내는 소쿠리에 담아

흘러 가는 농수로 물에 소쿠리 채로, 흔들 흔들 씻어서 집으로 가지고 와서 소의  죽을 끓여 주는데 넣었다.

풀이 더 자라고는 낫으로 베어 왔고, 어른들이 계단식 논 둑에서 억센 풀을 베어 와서는,

소를 마당에 메어 두고 던져  주기도 했었다.

 

소란 짐승이 순하다고 해도 어린아이가 만만 하게 보이면,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

이랴 이랴 하면 가고, 가다가 워어 워어 하면 서고 하지만,

그것도 이랴 이랴 하면서 이까리를  한번씩 소를 건들리게 하는 것이고,

워어 워어 하면서는 이까리를 당기듯 하는 것이였다.

 

시골에 가서 처음으로 소를 몰고 나갈 때는 얼마나 무서웠던지 소가 저를 무서워 하는 것을 알아 채고는,

제 맘대로 어린 아이를 끌고 다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야 끌려 뛰어 따라 다니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만 했지만,

밭에 콩 싹이 올라 오고, 콩이 자라서 녹색 빛이 진해 지면서 송아지까지 딸린 소는 소 풀 멕이러 나서면

송아지가 먼저 콩 밭으로 들어 가고, 송아지 후치러 들어 가면 소는 또 입새에서 콩 뜯어 먹고,

그렇게 들로 나가서 소 풀 뜯기고 오면 콩 밭 주인은  콩 농사 망쳤다고 우리 집으로 와서 야단 야단이고

어른들은 소 감시 잘 못 했다고 꾸지람 듣하시고,

씨족이 모여 사는 동네라 다 친척이라도 농사 짓는 것이나, 논에 물 대는 것이나, 콩밭에 소가 뜯어 먹는 것

다 양보와 이해가 없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생존에 관한 것이라 그럴 수 밖에 없었지 싶다.

 

한 두번이 아니고, 그런 날들이 계속 되니 초등학교 4학년 도시에서 온 꼬마 가시나도 화가 났다.

늘 나를 끌고 다니던 소에게  이까리를.

소 고개가 쳐 들수 없을만큼 당겨 잡으니 손으로 잡은 이까리 길이가 길어졌고,,

그 이까리로, 저 보다 큰 소를 등이고, 배 쪽이고 닿이는대로 때렸다.

소가 얼마나 큰  재산인지도 모르고, 자꾸 자꾸 때렸다.

소가 많이 놀랐던지 그 후로는 워어 워어란 말만하고 이까리를 당기지 않아도 말을 잘 들었다.

소와의 기 싸움에서 저 보다 훨씬 큰 어미 소를 어린 아이가 이겼던 것이다.

 

시골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소를 키우는 집에서 자라서 이미 초등 4학년 쯤 소를 몰고 풀을 뜯기러 나갈 때 쯤이면

소을 잘 다룰 줄 아는 것인데 그것을 초등4학년 때 처음으로 했으니 고생을 했던 것이다.

 

소는 영리한 동물이다.

그 영리함으로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또 때릴 것에 겁이 났고,

여름 갈수기이면 산 밑에만 소를 이룬 물이 있는 천을 건너가서 이까리를 뿔에 메고는 산으로 올린다.

우리들은 입은 옷 채로 방천 둑에 쑥을 비며서 귀를 막고, 멱을 감고,( 남자 아이 여자 아이가 섞여 있었으니)

물고기도 잡아서 고추장을 훔쳐가서는 찍어 먹으면서 놀다가.

늦은 오후에,

소를 데리고 내려 와야 하는 때가 되면, 그 중 제일 큰 아이가 큰소리로 소를 부르고 우리들은 따라 올라가면,

소도 때를 알아서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소가 그렇게 영리한 동물이다.

 

4~6학년까지 소를 몰고 다녔는데, 소하고 교감을 해서 친구가 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옆에 큰 소가 있다면 초등학생이던 그 시절처럼 무섭지 싶다.

소를 감당하지 못하니 어른들 모르게 때려서 기 싸움에서 이겼던 것이다.

그 때야 기 싸움이란 말도 생각지 못했고, 때려서 질을 들인다는 생각도 못 했었고,

그저 억울해서 분이나서 소  힘 되는대로 소를 때렸던 것이였다.

그러고 보니 소도 또 맞을 것이 겁이나서 말을 잘 들었고, 소 이까리를 어떻게 잡아야 소가 말을 듣는 다는 것도 깨쳤던 것이다.

 

소는 들에서 풀을 뜯고, 우리들은 댕댕이 줄을 걷어서 메뚜기 잡아 넣을 초롱도 손으로 짜고,

소꿉장난 할 때 쓰는 작은 소쿠리 모양도 만들고, 무릇을 뽑아서 무릎 잎은 머리카락이라 생각하고 돌돌 말아 올려서

비녀 꽂은 듯 하게 만들어 꼬쟁이를 끼워서 인형 놀이도 했고,

가을 추수 한 논들이 더 많은 때는 추수가 끝난 논에 풀어 놓고, 메뚜기를 잡기도 하고,

추수가 끝난 들에 비가 와서 논에 물이 고여 있는 만추 무렵에는 물 밑의 논바닥을 잘 보면 논고등이 숨은

자리가 보이고 손을 넣어 논고등도 잡아 올리고,

아이들이 잡아서 어떤 한집에 가져다 드리면 논고등 삶아서 가을 채소 넣어서 국을 끓여서

온 동네 어른들이 마당에 모여서 저녀 식사를 하기도 한,

지금에사 생각하면 낭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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