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여자의 치장

이쁜준서 2014. 6. 26. 15:08

 

우리 큰이모님은 칠순에 5~6년을 더 사시다 가셨는데도 가시는 날까지 화장을 하시고 메니큐어도 바르셨다.

돌아 가신지가 한 34여년 쯤 되었지 싶은데도.

일본에서 자라시고, 일본에서 결혼하시고, 히로시마 폭탄으로 병을 얻었던 남편은 해방이 되어 병든채로

한국으로 나오셨고, 남편 고향집에서 돌아 가셨다.

 

두분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남편이 돌아 가시고 나니 시댁에서는 자식도 없는 며느리 - 일본에서 시댁 형제 부모 없이 처가 식구들 만으로

올린 결혼식 했었다는 며느리는 해방 되고 병든 남편을 데리고 시댁에 왔을 뿐이였으니.

그렇다고 대 이를 자식은 아니라도 딸 자식이라도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나오셔서는 6.25전쟁시에는 고아원에서 일을 하셨고,

전쟁이 끝나고 교회가 부흥회를 열고 그 어수선한 시절에 맘에 의지가 되는 기독교 신자가 되는 사람이 많았을 때,

어느 부흥회에 참석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평생 기독교인으로 사셨다.

그러면서 젊어서는 교회에서 하는 유치원의 원장을 하시기도 하셨고.

 

그 연세에 그 시대 평범한 여자였던 이모님은 늘 화장을 하셨고,

우리나라에 메니큐어 화장품이 시중에 처음 팔리던 때부터 칠순에 몇년을 더한 연세에 돌아 가셨는데,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가셨기에 병환에 시달린 적이 없이 가시는 날까지도 화장을 하셨던 분이셨다.

 

왜 여자의 치장이란 제목의 글을 쓰게 되었는고 하면,

블로그 래방객 중에 왠지 관심이 가는 닉이 있어 갔더니, 아마도 환갑은 지내신 분 같았는데,

고운 핑크빛 메니큐어를 하신 것이 주제로 포스팅 된 글이 있었고,

세상 소풍길 마치고 가신지가 34년 쯤 되는 우리 큰이모님 생각이 났다.

 

우리 큰이모님은 자식을 낳으신 적이 없으시고, 6.25전쟁시 고아원에서 같은 보모로 일 하셨던

같이 살았던 아이가 중학교를 마치고 갈 곳이 없어 찾아 왔고, 같이 살면서 아들이 되어,

결혼을 시켜서도 같이 살아서 손주도 둘이나 보시기는 했지만,

 

어쩌면 자식을 낳아 기르시지 않으셨기에,

팔순을 바라 보는 연세에서도 여자이기를  포기 한 적이 없어 자기 치장을 하셨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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