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할미가 젊은 에미였던 시절에는 준서에미 갓난쟁이 때부터 첫돐이 될 때까지,
동네에 저 알라(아기) 엄마는 목욕을 매일 시켜서 즈그 할매가 우리 알라는 내 평생 목욕 했는 것 보다
우리 알라가 목욕을 더 많이 했을끼다 한다 했었다.
지금은 누구나 어느 집에서든 아기 숟가락을 따로 두고 아기 밥을 먹이지만,
그 시절에는 아기가 8개월이 될 무렵부터 어른 들 무릎에서 밥을 받아 먹을 때는 어른 먹던 숟가락으로 밥을
떠 먹이기도 했었기에,
저 알라 엄마는 숟가락 두개 놓고 밥 먹는다더라.
준서에미가 초등학교 입학 하기 전에는 잔병치례가 많아서 5살에는 병원에 두번씩이나 입원을 하기도 해서
종합병원으로 다녔는데, 갔다 오면 아이 옷에 병원 냄새가 배여서 속옷까지 갈아 입히니,
세탁기도 없어 손빨래를 하던 시절이고, 수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밤에만 물이 나오던 시절이었는데,
멀쩡한 깨끗한 옷을 병원만 갔다 오면 싹 갈아 입힌다더라.
초등학교 입학해서 저학년 동안은 여자 아이들은 여름이면 면 원피스 다름질 해서 입히고,
뒤로 두개 달린 긴 끈으로 리본을 묶어서 입혀 보내면 그 뒷모습이 어찌나 이뻐든지.
그런데 면 원피스라 하루살이처럼 하루 입고 벗으면 천에 힘이 없고 후줄근 한 것 같아서
하루 입고는 또 손빨래 해서 빨래 줄에서 피득하게 마를 때를 맞추어 걷어서 또 다림질해서 입히니,
다림질 한 옷도 하루만 입힌다더라.
그 시절 준서할미는,
계몽사 세계명작동화집이 한질로 나오기 전까지는 잠자리에 들어서, 엄지공주, 백설공주, 잠자는 공주,
재크와 콩나무? 준서할미가 자라오면서 들었던 구수한 옛날 이바구등을 잠자리에서 해 주었다.
말로 하다보니 조금씩 상황이 틀리게 이야기를 해 주게 되었고, 또 그래서 더 아이가 좋아라 했지 싶다.
그러다 계몽사 세계명작동화집을 들여 주었을 때는 낮시간 책을 읽어 주기도 했었고,
그러다 준서에미가 제 스스로 책을 읽어면서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친척들에게도, 동네 친구들에게도 별난스럽게 아이를 키운다고 소문이 났던 사람이다.
지금 준서에미가 준서와 살고 있는 것은 도와 주는 사람이 없으니 하루 하루 생활이 힘이 들거다.
친척 동서들은 내 친구들은 반찬해서 가져다 주고 한참씩 있다가 오던데,
그렇게 키울 때는 별난스럽게 키워 놓고는 맘이 변했나?
와 가지도 않고, 반찬도 해 택배라도 해 주지 않느냐?
한 동네에 살았던 친구들 중에는,
준서네 동네로 이사를 가서, 준서네도, 작은 딸도 거둬 주고 곁에 살면 되는데,
왜 아이들 고생시키는가?
그렇게 중하게 키워 놓았으면서 맘이 변했나? 도저히 이해가 않된다고 하기도 한다.
준서가 외손주가 아니고, 친손주라면 그렇게 두지 않을텐데. 외손주라서요라 하면서 넘어 간다.
지금도 방학이면 준서를 데려 다 놓는다.
준서에미가 장기 출장을 가거나 연수를 가거나 꼭 필요 하면 가서 그 기간 동안은 있어 주고 온다.
외손주라서 그런것도 아니고,
일단 객지로 가서 살고 있는 자식에게 부모가 오매불망 하면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가 손 놓아야 할 때엔 손을 놓아야
제 스스로들 방법으로 여무져 가면서 이 힘든 세상 사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매사가 닥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으로 살기 마련이다.
부모가 자식을 멀리 떼어 놓고 너무 오매불망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선조님들의 지혜였다.
그저 객지에 나간 식구들 혹여 끼니 못 먹을 것 같아서, 나간 식구들 밥을 밥 그릇에 떠 놓았지만,
지금이사 밥 굶을 일이 없으니 그러 하지는 않지만,
오매불망과 염려는 다른 것이다.
그냥 염려 하는 맘으로 준서에게, 가끔 전화를 한다.
오늘도 학교에서 재미있게 놀았느냐?고,
친구들과 재미 있었느냐고?
이제 성인인 자식들에게도 아주 가끔 잘 있었느냐?
전화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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