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다슬기 국

이쁜준서 2009. 8. 21. 17:56

준서가 여름방학 때 와 씨 뿌리고 간 쑥갓이 이만큼 자랐다.

 

준서할미의 고향에서는 다슬기를 사고디라 했고, 준서할미가 어렸을 적에는 먹지 않았다.

논 가운데로 이어진 수로에는 시작점이 샘이어서 맑은 물이 졸졸 흘렀고, 사고디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농약을 치지 않았기에, 가을 추수를 할 때 논에 도구를 치고 물을 빼면서 미꾸라지를 잡아 오거나

추수가 다 끝난 논에 물이 실리면 논고둥을 (우렁이) 을 잡아 논고둥을 삶아 김장배추 심어 놓은 것을

솎아서 나물을 하고 들깨도 갈아 넣고, 쌀도 조금 갈아 섞어서 그렇게 논고둥 국을 끓이고 또 초장에 숙회로 먹었다.

 

그 때 다른 지방에서는 다슬기를 요즘처럼 잡아서 먹었는지는 몰라도, 다슬기 국을 먹어 본 것은 결혼을 해 와서이다.

80년대만 해도 대구에서 다슬기를  사러 번개시장 쪽이나 시외버스 터미날이 있는 관문시장 쪽으로 가면  품질 좋은 다슬기가 많았다.

박박 씻어서 다슬기 몸의 미끈 미끈한 것을 씻어내고 물에 담구어 물먼지를 토해내고 소쿠리에 건져 얼마간 두면

고둥이 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을 때 뜨거운 물에 넣어 삶았다.

그러면 다슬기를 깔때 쉽다.

 

아직도 관문시장을 가면 좋은 다슬기를 만날 수는 있으나 차를 타고 가야하니 잘 가지 않아 일년에 추어탕 한두어번, 다슬기국 한번

정도, 경북지방에서 밤조개라 부르는 재첩조개국을 끓인다.

올해는 아직 아무것도 끓이지 않았는데, 어제는 서문시장에서 좋아 보이는 다슬기를 아는 사람이 권해서  사 왔다.

나물도 파도, 꼭 필요해서 정형외과에, 안과에, 농약사러, 가방고치러 두루두루 돌아오면서 늘 가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아서는 준서외할아버지께 마중 나오라 했었다.

좋은 다슬기를 삶으면 아주 물이 파랗다.

정형외과에서 무릎에 물도 빼고, 연골에 주사도 맞고 다리에 추가 달린듯한데, 거의 5시간을 돌아 다니고 왔으니

파김치가 되었다.

다슬기를 덜컥 사왔으니 하룻밤을 재울 수도 없고, 다슬기 국을 저녁 식사에 내었더니, 준서외할아버지 화가 났다.

무릎에 주사를 맞았으면 바로 올 것이지 볼일 다 보고, 이렇게 손 많이 가는 일을, 뭐 맛이 특별하다고 하느냐?

꼭 보면 이렇게 하더라하고 야단을 했다.

준서할미 동문서답으로 내년에나 끓이지 올 해는 끝입니다라 했다.

다슬기가 좋아서 샀다면, 더 화를 돋굴 것 같아서.

 손만두를 하자면 일이 많다.

손국수를 해도 힘은 든다.

막상 자실 때는 맛나게 아주 맛나게 자시면서, 준서할미가 쉰의 중반을 지나고 나니, 만두는 마트에서 파는 것을 사 먹으면 되고,

손국수는 생면을 사와 끓이면 된다면서 화를 내었다.

만두를 하지 않은지가 서너해 되었고, 손국수도 준서가 있을 때 가끔 해 먹이던 것이라 이번 준서가 왔을 때 했지만,

거의 하지 않는다.

콩가루를 조금 넣고 밀가루 반죽을 해 홍두깨로 밀어서 감자, 호박을 채 썰어 넣고, 매운 고추와 파와 마늘로 양념장을 만들고....

손국수는 이 계절 여름의 별미인데.....

 

이러다 다슬기 국도, 추어탕도 끓이지 않게 될런지도 모른다.

준서할미가 조금 힘들게 하면 준서외할아버지 맛난 것을 자실 수 있는데 싶어 하는데, 하나 둘씩 자꾸 하지 않게 된다.

건더기 많이 들어 있는 논고둥국이 먹고 싶다.

준서할미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믿을 수 있는 논고둥을 구 할 수 없어 할 수 없는 음식이다.

가고 싶다.

매밀 밭에 고추 잠자리 날고, 소풀 멕이러 가면서 어른들 몰래 목화밭에 들어가 열매였는지를 따 먹던 그 시절로 돌아 가고 싶다.

내가 에미도 아니고, 할미도 아닌 나 어렸던 시절로 돌아 가고 싶다.

 

오늘은 정말로 마음 따로 몸 따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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