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저가 초등고학년 때까지도 시골 집성촌에서는,
먼저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혼사를 올리는것을 장가 간다 했습니다.
요즘도 향교에서는 구식결혼식을 올리는데.
그 때의 시절 장가가는 형식으로 올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신부가 안방에 화장하고
쪽두리 쓰고 있다가 절차에
신부를 부르면 마루에서도 내려 와야하고 부축을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혼인식을 올리고
첫날밤도 치루고 신랑은
처갓집에 각시를 두고 자기집으로 갑니다.
각시는 거의 1년이상
친정에 있다가 살림을 배우고
좋은 날 받아서 시댁으로 가는데 그날이 신랑집 잔치날이고 친척들을 초대 합니다.
그동안 아기를 낳게 되면
그 아기가 귀하지 않게
커라고 울타리에 구멍을 내고 아이를 밖에서 안아 들이면 아기 할머니는 안에서
받아 들입니다.
개구녕받이로 귀하지 않게
키운다는 조상님들께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집 온 새댁은 낯설고
많은 일도 해야하니 친정집
친정엄마 생각에 남몰래
첫 친정가는 날을 고댸 합니다.
그런데 시집에서도 마음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고 첫 .친정 오는 날은 날을 받아서
한지에 적어서 친정에서 사람이 그 편지를 들고 왔습니다.
첫 친정이란 말은그런 절차와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초등 고학년 시절
개구멍받이로 받아 들이는
사촌 아기도 보았고,
숙모 친정에서 첫친정 날 받아 그 편지 들고 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친정집은 그 시절에는 참
큰 의미가 컸습니다.
이란유목민 후예들 이야기 중 제일 선호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맏딸은 그 들형제 5남매중
맏이입니다.
이제 기어 다니는쌍둥이를
키우는데,
친정에 와서는 누구든 아기 귀엽다고 보는 사람이 있으니 집짓는 일을 할 때는 세멘트 몰탈을 브로크를,
외발수레로 날아다주고.
가스불로도 조리를 해도 반이상은 불을피워서 땔감이
필요하니 산에 가서 땔감을
해 주기도하고,
집 짓는 기술자들이 많은 날은
밥 해주는 일도 도와 줍니다..
오늘은 친정집에서 사 놓은
쌀 포대기를 마당에 자리 펴고
쏟아서는 왕골처럼 풀로 짠
넙대디한 그릇에 담아서 머리 위로 올리고 바람에 날리고,
또 그 도구에 쌀을 놓고.
우리나라 채이처럼 까불더라구요.
요즘친정어머니가 팔을 다쳐서 못 하시니 해주고.
또 날씨가 추워서 목초지에
풀이 모자라니 염소 우리에
사료를 목초지에 갔다오면
먹도록 준비하는 일을 어린 동생댁이 하니 다 도와 주고,
이 경우는 친정집에 오면
일손을 보태고 갑니다.
오늘은 아기 쌍둥이를 친정동생이 머리가 길다면서
깎아 주기도 했습니다.
여자에게 친정집은 여러 의미가 있는데,
지금이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의미를 둘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