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약간씩 뒤척이면서 자면
새벽쯤에는 보온소파 잠자리는
등은 따끈하고, 온몸은 노곤 하리만큼 따뜻합니다.
남편은 온수패드를 6년 사용하니
올해는 덜 따뜻하다 해서,
신제품이라는 것을 사서 깔고 자니
적당하게 포근 한 모양이고,
그래서 보일러 난방은 실내에서 어깨 시리지 않을 정도만 해도
충분하게 낮시간도 지낼만합니다.
우리 집은 아침밥을 08시경에
먹는데, 여름에는 07시경에 먹습니다.
저는 거의 새벽에 잠을 깨니
늦잠으로 황망할 때는 없습니다.
어려서도 그 나이대 저가 할 수 있는 일을 시키지 않아도 했고,
초등학교를 면 단위에서 졸업을 하고, 중학교는 군 단위에서 졸업을 했고,
고등학교는 부산이었습니다.
중학생일 때는 외숙모님께서
아침 지으러 나가시고 이내 따라
부엌으로 가서는 장독에서 된장도 떠 오고 겨울에는 김장독에서 김치도 내어 오고,
밥솥에 불을 때고,
저가 그렇게 도우면 외숙모는,
작은 솥에 국이나 찌개등의 국물
음식을 하시고 그때 도시락을 3개 싸는데 도시락 반찬도 만들기도,
담기도 하셨습니다.
외삼촌께서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시기는 하셨어도
해방 직후 한국으로 나오셔서
면서기로 일하셨는데 그때는 도시락을 준비해서 가셨기에,
학교에 가면 제 도시락 반찬은 좀 좋았습니다.
저가 도우면 외숙모님은 외할머니와 저가 자는 방 가마솥에
식구들 따뜻한 물을 데워 놓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참 엄하게 키우셨습니다.
초등 1학년 부산에서 담임선생님께서는 참 무서운 여선생님이셨는데,
우리들이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 오시지
않으니 얼마나 뛰어 다니고 난리가 났을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손바닥 맞으러 나오라 하고는 자국이 날 정도로 아프게 맞았는데 제 차례가 되니
너는 절대로 떠들지 않고 앉아 있었을 거라면서 때리지 않으셨고
정말로 앉아 있었으니 반 아이들도
아무말하지 않은 적이 있고,
중학생일 때는 방과 후 청소를
다 해 놓고 다들 책상에 앉아서
노는 것을 지나가시다가 보신 우리가 할머니 선생님이라 별칭으로 부르는 선생님께서 보시고는 어디 책상에 앉느냐고 호되게 혼을 내시면서는
저에게는 내가 안 보아도 안다.
책상에 앉지 않았을 거다
하셨습니다.
야는 보나 안보나 똑 같은 아이다라
하셨습니다.
그 두 가지 일은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미안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새 책을 사서 본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때이고.
작가들의 신작 소설이 많이 발간되던 때였습니다.
아침 등교 하면서 책을 빌리고,
하교 시에 반납하고 또 한 권을
빌려 갔다 그 다음 날 반납하면
1권 빌리는 대여로로 두 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몰래몰래
책을 읽으면서도 꾸지람을 들은 적은 없고 필기하는 시간이라던가
선생님께서 책 읽으시면서 제 곁으로 오시는 것이 수업시간에 책 읽지 말라는 경고인 줄도 모르고 선생님께서는 저가 수업시간에 책 읽는 것을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일주일에 남자 형제들 한 집,
학교앞 임대 책방 주인이 모아 주는 그릅과외도 한팀 그런 일도 했습니다.
그 때는 고등학생이 보는 영자신문이 일주일에 한번 나왔는데 전 학년에 다니면서
구독자를 모집하고 신문이 오면
나누어 주는 야르바이트도 했습니다.
작년, 재작년은 저가 션치 못해서
두 친구와 이웃친구가 봄에 와서 분갈이를 해주고 갔습니다.
남편도 도와 달라 하면 도와주겠지만 서로 꽃 키우는 일은 맞지 않아서 되도록이면 피 하고,
작년에는 이웃친구가 한번 더 와서
도와 주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걱정을 하지 않고 남편이 하는대로 딴지 걸지 않고
넘겨 줄 생각 입니다.
작년 여름 다년생들도 많이 가버렸고, 겨울 월동은 포기한 다년생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남편에게 다 넘기고
저가 힘되는 대로 도우면 됩니다.
작년 가을 남편이 나무꽃들은 1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데 물은 1년 내내 주어야 한다고,
내년은 정리를 할 거라고 했습니다.
저가 영 안된다 싶으면 포기도 잘합니다.
오늘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또래들보다는 엄하게 자랐습니다.
작넌에 준서 엄마가 2박 3일
호텔에 숙식을 하면서 하는 출장일이 있어서 그 일 마치고
준서엄마는저그 식구보다 하루 먼저 와 저하고 하루 잤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엄하게 키워서 미안하다 했더니 아니라고,
그렇게 키워 주셔서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항상 당당
했고,새릅게 보고 배울 기회도 많았다고 기특하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미안 했던 맘도 지울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왔다 가면서 남은 책임은
남편 하는대로 보아 주고 대접 해 주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